국정원, 흔들리지 않는 인사시스템 마련할 때[동아시론/장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3일 2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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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무질서한 인적 청산과 역청산 반복
요원들 정보 노하우, 내부 상대 견제에 사용도
예측 가능 인사제도, 원장 임기제 등 검토해야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인사 소동이 국정원장 유임으로 일단락되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는 모양새다.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세상사 어떤 조직이든 인사는 항상 태풍의 핵이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비밀정보기관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이번처럼 외부로 알려져 여론의 집중타를 맞게 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직시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 국가정보기관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 5·16군사정변을 계기로 탄생하였다. 당시 집권세력은 정통성 취약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소련의 체카와 같은 비밀정보조직이 필요하였다. 레닌은 볼셰비키의 10월 혁명 이후 각지에서 반대 세력이 일어서자 한 달 후인 1917년 12월 체카 설립을 지시했었다.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불과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10일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것은 5·16군사정변 주체 세력들의 준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정보부는 단순한 정보기관이라기보다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명의로 발급된 중앙정보부 요원의 신분증에는 ‘이 증을 소지한 자에게는 모든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중앙정보부는 1963년 군정이 끝날 때까지 사실상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기능을 통합한 강력한 권한을 기반으로 통치권을 보좌하면서 군사정권 연장을 위한 장애 제거에 주력하였다. 다만 1965년부터는 공채 제도를 도입해 조직을 문민화하고, 국내외 및 북한 관련 정보와 대공수사 분야 등에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구축해 나갔다. 이 같은 조치는 뒷날 수장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나 정권 교체기마다 숱한 존폐 위기를 겪으면서도, 명칭 변경과 일부 기능 조정이 있었을 뿐 그 위상과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태생적 굴레의 한계로 인해 권력에 예속되었다거나 정치 개입, 권한 남용, 정보 독점, 인권 침해 등을 일삼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나 ‘과거사 진상규명’ 등을 통해 그런 사실이 상당수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실질적 교체를 이뤄낸 당사자이자 ‘정보정치’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국정원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 직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대한 대대적 인적 쇄신을 단행하면서 300여 명이 반강제적 명예퇴직을 하였다. 이후부터 권력 지형의 변화나 정권 노선 및 대북 정책 기조에 따른 무질서한 인적 청산과 역청산의 악순환이 반복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정권 초기인 2017년부터 ‘국정원 적폐 청산 TF’를 만들어 지난 정부의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이끌어가면서 상당수 인사들이 사법처리를 받는 등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윤석열 정부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부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고, 급기야는 외부로까지 알려지면서 보안이 생명인 정보조직의 안정이 위태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보 수사에 특화된 요원들의 노하우가 상대 세력에 대한 음해와 견제에 활용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사태의 진상이 뭐가 됐던 유사한 일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정보력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국가와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 이스라엘 모사드는 수장이 5년 이상 재직하고, 요원들도 어떤 한 적대세력을 10년 이상 추적한다. 미국 CIA 역시 국장 임기가 평균 3∼4년이고 요원들에 대한 인사도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정보기관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직 안정성을 바탕으로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재탄생하려면 인사시스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직 경로를 통해 예측 가능한 인사가 이뤄진다면 조직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정원장 임기제나 고위직 인사위원회 운영 등 경찰위원회와 같은 중립적 위원회 설치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국가정보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이를 통한 국민들의 정보기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 불식의 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창설 62주년이 지난 세계적인 국가정보기관의 정체성과 명성을 회복하고, 권력의 정보기관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랑스러운 정보기관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


#국정원#인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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