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공휴일 재지정해 대한민국 건국 기리자[광화문에서/조종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0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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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많은 이들이 거론했던 죽산 조봉암(1898∼1959)과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서훈 필요성을 최근 이 지면을 통해 다시금 촉구한 바 있다. 이달 초 국가보훈부는 두 인물의 서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목의 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푸대접받는 제헌절을 제대로 기리는 일이다.

75년 전인 1948년 단군 이래 처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헌국회는 7월 12일 전문과 10장, 103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헌법을 통과시키고 17일 공포했다. 아직 정부 수립은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헌법이 마련된 이상 한국인은 이날부터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에 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제헌헌법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당대의 학자로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낸 위당 정인보 선생(1893∼1950)은 제헌절 기념곡 가사를 지으며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라고 했다.

그러나 5대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날이 제헌절이다.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그렇게 바꿨다.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감소 우려 때문이었다지만 당시 대통령의 헌법 경시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15년이 지난 지금 제헌절은 거의 잊힌 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과 학교에 가야 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국회의 제헌절 기념행사는 딴 나라 얘기인 게 당연하다. 과거에도 제헌절의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이 적지 않았는데, 15년 새 그런 학생들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헌절의 위상 하락은 또 다른 문제도 낳았다. 국경일이 5개나 있는데, 대한민국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은 대체 언제인가. 8·15 광복절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1948년 정부 수립을 동시에 경축하는 날이지만 다수 국민이 가진 광복절의 심상은 해방의 의미가 9할 정도다. 과거 일각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리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논란만 낳았다. 3·1절은 거족적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고, 개천절과 한글날 역시 거리가 멀거나 무관하다.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탄생과 관계됐다고 인식되는 날은 사실상 제헌절뿐인 것이다.

근로시간 감소 우려 역시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근거가 되긴 약하다. 최근 빠른 속도로 줄긴 했지만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많다. 하루 쉬어 8시간 노동을 덜 한다고 해도 5위인 건 그대로다.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 놀아야 이날이 뭔가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국경일이 뭔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니 의미를 되새기면서 축하하고 놀자는 날이다. 해마다 제헌절에 서울 여의도 등에서 불꽃 축제가 펼쳐지고, 공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함께 즐기며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제헌절#공휴일 재지정#대한민국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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