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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폐허된 박물관 복원한 건축가, 프리츠커상 받다[영감 한 스푼]

입력 2023-03-14 03:00업데이트 2023-03-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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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천을 이어 붙인 것처럼 여러 재료가 섞여 있는 신베를린 미술관 벽면의 모습. 프리츠커상 제공천을 이어 붙인 것처럼 여러 재료가 섞여 있는 신베를린 미술관 벽면의 모습. 프리츠커상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김민 문화부 기자
2009년 3월 독일 베를린의 어느 박물관. 텅 빈 건물인 이곳에 베를린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가을에 정식으로 개관하기에 내부에 있어야 할 유물들은 아직 설치되지 않은 상태.

이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의 유명한 작품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베를린 신박물관입니다.

신박물관이 있는 지역은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베를린의 ‘박물관 섬’입니다. 박물관 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신박물관은 왜 텅 비어 있고, 베를린 시민들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이 박물관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막 복원을 마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을 복원하는 일을 맡은 이는 8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70)였습니다.

새롭게 거듭난 아픈 역사




베를린 박물관 섬은 구박물관이 1828년 처음 건축된 후 100여 년 지나 1930년 완성된 곳으로, 5개 박물관이 한곳에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 19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됐지만, 모든 건물이 세워진 지 9년 만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박물관들은 문을 닫게 됩니다.

그중 신박물관은 1943년과 1945년 베를린에 가해진 공습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동독이 점령하면서 6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독일 시민들에게 신박물관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었죠. 이곳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93∼1997년 3단계에 걸친 국제 공모 끝에 치퍼필드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공간을 다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역사이니 건물을 부숴야 할까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보존해 그 역사를 기억하도록 해야 할까요. 프로젝트를 맡은 치퍼필드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남아 있는 역사 중 일부를 보존하되, 완전히 부서진 곳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절충안을 선택했습니다.

이를테면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는 기둥은 그대로 복원해 고통스러운 역사를 드러냈습니다. 사라진 공간을 다시 만들 때에는 재활용 벽돌이나 과거의 건물에 사용됐던 것과 비슷한 소재를 선택하되, 현대적인 미니멀리즘 방식을 적절히 섞었죠.

치퍼필드는 이 과정을 “수백만 번의 기술적, 미학적, 정치적 선택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것은 살리고 없애야 할지를 이 건물이 속한 도시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1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복원 작업은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로부터 “유럽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때를 계기로 치퍼필드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의 가치


데이비드 치퍼필드. 프리츠커상 제공데이비드 치퍼필드. 프리츠커상 제공
이번 프리츠커상의 수상자 선정이 독특했던 것은 치퍼필드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건축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CNN은 “비정형적 형태의 프랭크 게리, 굽이치는 곡선의 자하 하디드, 콘크리트의 질감을 살린 안도 다다오 등 대표적 스타일이 있었던 기존 수상자와 정반대되는 건축가를 선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재능 있는 건축가는 때때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버리기도 한다”며 “세계 여러 도시에 있는 치퍼필드의 건축은 보자마자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치퍼필드가 그만큼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건축이 있는 환경과 맥락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디자인의 배경으로는 치퍼필드가 자란 환경과 경력을 쌓아온 이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영국 잉글랜드 남부 데번의 농촌에서 자란 그는 수의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체육 외에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대학을 가지 못해 킹스턴 아트스쿨에 진학했다가 영국의 권위 있는 건축전문학교 AA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그 후 저명한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아래에서 일했지만 그의 첫 프로젝트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1985년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잇세이의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눈에 띄어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 일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프로젝트를 맡게 됐죠. 고국인 영국에서 인정받은 것은 그 뒤였습니다.

치퍼필드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외국에서 일을 시작하며 다양한 문화들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덕분에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도 하죠.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비롯해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합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새롭고 반짝이고 화려한 것을 모두가 원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가 오래된 것을 부수지 않고 되살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 건축가를 선정한 것은, 잠시 멈춰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돌아보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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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한 스푼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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