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디난트 호들러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상징주의 화가다. 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외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상징을 표현하려고 했다. 1890년대 이후 사랑, 죽음, 희망, 믿음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주제에 몰두했는데, 이 그림(‘봄’·1901년·사진)은 사랑을 다루고 있다. 들판에 핀 노란 꽃들과 봄이라는 제목은 청춘 남녀의 사랑이 점점 커지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과 자세는 완전 다르게 읽힌다. 같은 장소에 함께 있을 뿐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녀는 봄의 온기를 전하려는 건지, 온 힘을 다해 소년 쪽으로 바람을 불어댄다. 아주 적극적이다. 반면, 소년은 무심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둘 다 얼굴이 빨개진 걸로 봐선 좋아하는 사이인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툰 청춘의 모습 같기도 하다.
두 인물의 모델은 호들러의 조카와 아들 헥토르다. 당시 아들은 14세였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호들러는 헥토르의 엄마와 헤어진 후 결혼한 부인과도 이혼한 상태였다. 사랑에 서툰 건 그림 속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자신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