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韓美 ‘확장억제 강화’가 남길 숙제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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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공유’ 나토서도 높은 확장억제 불신
북핵 외교환경 악화 뚫을 시도 나서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우리는 확장억제 공약에 전념하고 있으며 한국에 관한 한 매우 진지하다.”

2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국방장관과의 회담 직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 전략폭격기가 동원된 한미 연합 공중훈련에 반발한 북한 담화에 이같이 말했다. 비슷한 시간 백악관도 “미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동맹국과 계속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이 북한 외무성의 위협 담화에 논평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한미 간 협의에서 미국은 빠짐없이 확장억제 강화 약속을 강조하고 있다. 그 표현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한국을 방어할 것’이라는 기존 표현에 더해 ‘한국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북한 정권의 종말’ ‘한국에 대한 도전은 한미동맹 전체에 대한 도전’ 같은 다채로운 수사가 동원된다.

이 같은 기조는 윤석열 대통령 방미 때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논란을 무릅쓰고 자체 핵 보유까지 언급하며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높일 실질적 조치를 촉구한 시도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북한에 핵 위협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확장억제 강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확장억제가 고조되는 북핵 위협과 정체된 비핵화 협상을 풀 만능 열쇠는 아니다. 최근 한미 간 전술핵 재배치 사전 논의를 제안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대북 정책 및 확장억제’ 보고서는 “확장억제 이슈는 물리적인 요소보다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대한 북한 핵 공격에 미국이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이 북한 핵위협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핵으로 반격할 것이란 믿음 없이는 한미가 확장억제 강화 조치에 합의하더라도 국민 불안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미국핵과학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동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4명가량이 자체 핵개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핵위협 수위를 높이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선 자체 핵개발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70%에 육박했다.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한 나토 회원국에서도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높은 셈이다.

확장억제 강화의 기회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자체 핵개발 언급에 대해 미 조야 전문가들은 실제 핵무기 개발보다는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으로 본다. 일각에선 불쾌하다는 반응을 넘어 ‘한국의 요구는 끝이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물론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박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확장억제 강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북핵 논의가 확장억제로 귀결되는 현재 흐름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총체적 대북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하겠다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방중은 미국 상공에 뜬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취소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정상회담 이후 일시적 해빙 무드였던 미중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될 확률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해도 추가 제재는 물론이고 대북 규탄 결의안조차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체된 북핵 위기를 뚫어낼 다면적 외교가 필요한 때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한미#확장억제 강화#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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