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지만 김정은 집권 이래 양국 간에는 긴장과 마찰이 이어졌다. 김정은이 2013년 대표적인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데 이어 2017년 역시 친중파인 이복형 김정남까지 암살하면서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이 주최하는 주요 외교 이벤트 때마다 마치 잔칫상에 재를 뿌리듯 도발을 자행해 화를 돋웠고, 김정은은 방북한 시진핑의 특사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최근 나온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당시의 험악한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눈에 띈다. 2018년 3월 첫 방북 때 폼페이오는 “중국은 늘 ‘주한미군 철수는 김정은 위원장을 매우 기쁘게 할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김정은을 떠봤다. 그러자 김정은은 웃음을 터뜨리고 테이블까지 두드리며 “중국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나아가 중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중국은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처럼 취급하려고 미군 철수를 원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보다 한발 더 나가 미국과의 거래에서 혈맹의 핵심 관심사를 무시하고 그 책임마저 떠넘길 기세였다. 하지만 막상 북-미 대화가 가동되자 김정은은 누구보다 중국과의 단절을 두려워했다. 회담이 이뤄질 때마다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달려가 훈수를 받았다. 폼페이오는 “중국은 북한에 대해 완전에 가까운 통제권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북-미 대화는 좌초했지만, 북-중 관계는 복원됐다. 중국에 대차게 호기를 부리던 김정은. 이제 어느 때보다 중국에 매달리고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