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 자유! 허공에 메아리치고[광화문에서/홍수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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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차장
홍수영 정치부 차장
풍자만평 ‘윤석열차’ 사태를 유심히 지켜봤다. 정부가 나서는 순간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 번질 게 뻔한 사안이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역시 격노했다. 4일 오전 11시 44분, 오후 9시 8분 하루에 두 차례나 설명 자료를 냈다. 만평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으니 정치적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하고,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이후 빚어진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한바탕 소동으로 일단락됐지만 윤석열 정부가 복기해야 할 대목이 있다. 문체부가 이례적으로 부지런하게 대응한 상황 말이다. 야당에서는 당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김건희 논문’ 국정감사를 덮기 위한 문체부의 자폭 전략이었다고 해석한다. 이 정부가 그만큼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진 않다. 그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 보좌를 위한 과잉 충성이나 윤석열 정부의 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문체부는 이 과정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으나 윤석열 정부의 중대 기밀을 노출시켰다. 정부 부처조차 윤 대통령이 부르짖는 ‘자유’가 실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윤 대통령의 자유 철학이 국정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는 점을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보여준 사건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뒤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 윤 대통령의 연설문 3종 세트로 꼽히는 대통령 취임사, 광복절 경축사, 유엔 총회 기조연설문의 화두는 모두 자유였다. 다시 없을 취임식에서는 자유를 35차례 외쳤다. 윤 대통령은 경제 문제도, 국가안보도 다 자유라는 개념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에 뛰어들며 뚝딱 만들어낸 포장용 철학 같지는 않다. ‘인생의 책’으로 꼽은 ‘선택할 자유’(밀턴·로즈 프리드먼),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스모글루, 제임스 로빈슨)가 이를 증빙한다. 자유와 다양성이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진보를 가져온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진 책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철학은 정부 활동으로 구체화돼 국민에게 가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자유라고 한다면 역대 정부의 국정 운영에서 자유를 해친 요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의 확장을 돕는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정교하게 펼쳐야 한다. 아니면 장삼이사의 ‘다방 철학’과 다를 게 없다. ‘윤석열차’ 논란은 이 간극을 드러냈다. 자유의 확장은 2022년 현재에도 살아있는 화두일 수 있었다. 그러나 철학의 빈곤과 실행력 부족으로 허공 속 메아리가 되고 있다. 이 정부가 뭘 하려는지 출범 5개월이 지나도록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성 보수들은 아예 ‘이재명 구속’을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사명처럼 만들고 있다.

2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한 국가전략 전문가 이홍규 KAIST 명예교수가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 조언을 다시 들려주고 싶다. “비전을 구체화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뒤 이에 따라 정책을 시행하면 국민은 정부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 비전, 목표, 정책을 정렬해 국민과의 공감도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홍수영 정치부 차장 gaea@donga.com
#윤석열 정부#표현의 자유#자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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