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더 떨어져야 한다 [오늘과 내일/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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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기 대비 하락했을 뿐 여전히 높아
집값 상승세 전제로 한 규제, 조정해야

김유영 산업2부장
김유영 산업2부장
최근 1년 사이 집값 판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억대 하락 거래가 나오고 주간 아파트값 통계에서도 ‘10년여 만에 최대폭 하락’이라는 수식어가 이젠 익숙해졌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조차 “집값이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집값 급등 피로감이 컸으니 이제라도 조정되어야 마땅하긴 하다. 규제 부작용으로 치솟은 집값이 마냥 오를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계기가 됐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분양가상한제 도입과 대출규제 강화 등 겹겹의 규제로 ‘버블세븐’과 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집값이 급등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며 집값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 때 세금과 대출 등 전방위적인 규제로 튀어 올랐던 집값이 정상화되는 과정의 초입에 겨우 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실제 서울 잠실 대단지 30평대 아파트(전용 84m²)는 지난해 27억 원에 팔렸다가 최근 20억 원을 밑도는 가격에 거래돼 화제가 됐지만, 5∼6년 전 시세가 14억 원 안팎이던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다. 집값이 조금 떨어졌을 뿐, 안정화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이번 집값 하락을 촉발시킨 금리 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과거 집값 하락기 이후 하우스 푸어가 문제 됐지만 그땐 그나마 금리 인상이 시차를 두고 이뤄졌다. 이번엔 국내외로 빅스텝을 밟아대고 있어 변동금리 대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특성상 과거보다 더 고통받는 하우스 푸어가 나올 여지가 크다.

주택 거래가 동결되다시피 한 것도 문제다. 팔려는 사람은 본전 생각에 선뜻 호가를 못 내리고 사려는 사람은 더 떨어질 것 같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심리다. 이 같은 상황이 고착화되면 새집을 계약했는데 기존 집이 안 팔려 입주를 못 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다. 일부 금융권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단한 상황에서 미입주나 미분양 등으로 부도 어음을 못 막는 건설사들이 나오면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집값이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 모르고 졸지에 집값 걱정을 떨쳐버린 정부가 현재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절대적인 집값 자체가 높아진 만큼, 과거 집값 안정기에 펼쳤던 규제나 집값 상승을 전제로 내놨던 규제를 현 상황에 맞게 선별적으로 실수요자를 위해 푸는 것이다. 일례로 변동금리대출을 고정금리대출로 전환해주는 안심전환대출이 있지만 집값이 4억 원을 넘으면 안 된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보유자는 언감생심인 이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중도금대출 기준도 현재 분양가 9억 원 초과 주택은 원천 봉쇄됐지만, 이는 과거 고가주택 기준이 9억 원이었을 때 만들어진 규제다. 현재 9억 원을 고가주택 기준으로 보긴 힘든 만큼 규제를 현실화해서 거래 물꼬를 터줘야 한다. 아울러 빌라 깡통전세나 공시가와 시세 역전 가능성 등을 막고, 외곽에 물량 폭탄 계획만 쏟아낼 게 아니라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도심 공급이 가시적으로 늘게 해야 한다.

집값이 너무 높으면 결혼 출산 연애 등 삶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개인 선택이지만 집값 상승기이든 하락기이든 집값이 그 선택의 장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집값 급등기에 펼친 규제를 집값 하락기에도 구사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 규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 불안, 나아가 서민 불안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유영 산업2부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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