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수영]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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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차장
홍수영 정치부 차장
대통령실 참모들은 모르는 것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알 때가 있다. 인사 문제나 현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등에 대해 종종 그랬다. 전날 대통령과 ‘번개 저녁’을 했다는 수석에게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더니 울상을 짓는다. “제가 대통령님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지도부도 아닌 여당 의원에게 물었더니 술술 읊는다. “그냥 내 말대로 쓰면 된다”고 자신감도 내비친다.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거나 대통령실 소식을 전해줄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지나며 나아지고는 있지만 지난 3개월여 모습이 그러했다.

‘핵관’(핵심 관계자)의 기원은 이명박 정부 때다. 당시 ‘핵관’은 청와대 실세 참모를 말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입 노릇을 하는 참모에게 붙는 표현이었다. 대선 당시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도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하고도 이들이 ‘윤핵관’인 것은 이상하다. 대통령실이라는 공식 참모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윤핵관’으로 지목된 의원들은 억울해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악의적인 프레임이라고 여길 것이다. 기자 또한 정치 공학자가 돼버린 이준석식 프레이밍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핵관’은 실재한다. 취재할 때 실감하고, 의원들에게서 은연중 확인한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이 얼마 전 동료 의원을 “실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낮은 국정 지지율과 관련해 “실장님은 쓴소리 한다더라. 결국 대통령에게 달렸다”라고 말했다. 여권에는 두 명의 ‘실장’이 있는 것이다. 용산 비서실장과 여의도 비서실장 말이다. 실제 역할 여부를 떠나 여당 의원들의 인식이 그렇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원들은 22대 총선의 공천을 줄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구나 직감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 참여한 지 9개월 만에 국정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검찰 시절부터 숱한 정치권 인사들과 알아왔지만 100% 신뢰할 만한 인연이 많지는 않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도 때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권핵관’ ‘장핵관’ 등 윤핵관에서 세포분열한 의원들이 활개 치며 ‘윤심(尹心)’을 파는 모습은 너무도 기이하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더는 양해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국민에 대한 ‘민폐’다.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으니 참모를 갈아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틀린 말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3개월여 만에 대통령실 개편을 단행했다. 국정 쇄신을 위한 물갈이는 필요하다. 다만 ‘존재감 없는 참모’ 사태를 또다시 빚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인연이 깊든 일면식도 없든 ‘윤핵관’이 아닌 참모들이 뛰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용산 시대’의 강점으로 대통령과 참모 간 격의 없는 소통을 내세웠다. 물리적 가까움만으로 해결되진 않는 게 있다. 자신감이 없는 참모는 정무 대응도, 대국민 소통도 할 수 없다. 그 자신감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



홍수영 정치부 차장 gaea@donga.com



#번개 저녁#핵관#용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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