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구하는 ‘사과의 기술’, 빠르고 구체적이며 진실하라[광화문에서/김창덕]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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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1부 차장
김창덕 산업1부 차장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저비용항공사 라이온에어의 비행기가 추락해 189명이 사망했다. 5개월 뒤인 2019년 3월 10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어라인 항공편이 추락해 사망자 157명이 발생했다. 둘 다 미국 보잉이 만든 신형 여객기 ‘737 맥스8’이었다.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3월 8일과 16일 보잉 홈페이지에 두 번의 성명을 냈다. 사과라기보다는 유가족을 애도하는 수준이었다.

보잉의 공식 사과는 4월 4일 나왔다. 첫 사고로부터 따지면 6개월째에 접어들고서야 737 맥스8의 기체 결함을 인정한 것이다. 그것도 에티오피아 교통부의 첫 공식 조사 결과 발표가 나온 뒤였다. 떠밀리듯 사과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뮬런버그는 그해 12월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났다.

보잉 사례는 경영학자들 사이에서 ‘최악의 사과’로 거론된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샌드라 서처와 샬린 굽타 연구원은 같은 해 1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문에서 보잉의 대처를 언급하며 “사과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최근 시험대에 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세탁을 하던 중 드럼세탁기 도어의 유리가 깨지거나 이탈했다’는 경험담이 줄지어 게재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과 국가기술표준원도 삼성전자의 해명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18일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다. 불량 제품 무상수리 방안도 함께 내놨다.

상황이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삼성의 이번 대처는 비교적 무난했다는 평가가 많다. 비교적 빨리 조치가 취해졌고, 짧고 명료한 공지에 필요한 내용이 모두 담겼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의 갤럭시 노트7 발화 사태, 올해 상반기 갤럭시 S22 게임최적화서비스(GOS) 논란 등에 한발 늦은 사과로 빈축을 샀던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기업은 다양한 리스크를 수시로 맞닥뜨린다. 자신의 잘못으로, 때로는 자신과 무관한 일로도 위기는 찾아온다. 제품이나 서비스 불량이 이슈화하거나 일어나선 안 될 사업장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을 사기도, 회사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한다. 국내 대표 기업들이 모두 최근 겪은 일들이다.

이럴 때 사과부터 할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기업은 선택해야 한다. 비슷한 일과 관련한 과거 사과문을 거의 ‘복(사해서)붙(이기)’한다거나,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하려 사과도 해명도 아닌 변명만 늘어놓을 때가 있다. 나중에 법적 공방으로 번졌을 때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사과를 전략적으로 생략하는 기업도 있다.

고객은 언제나 냉정하다. 신속성, 구체성, 진정성 등 사과의 핵심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면 고객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시장은 증거를 놓고 다투는 법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사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다만 ‘사과다운’ 사과가 위기대응 시나리오의 맨 윗줄에 있어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기업#사과의 기술#속도#구체적#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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