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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일제강점기 전쟁 원혼 달래준 ‘흥천사 감로도’[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입력 2022-06-21 03:00업데이트 2022-06-2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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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응 문성과 남산 병문, 두 스님이 그린 ‘흥천사 감로도’(1939년·가로 224cm, 세로 159cm). 감로도는 망자의 천도 의식에 사용되는 불화이지만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다양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풍속화로도 손색이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이거 불화(佛畵) 맞아요? 왜 코끼리가 나오는 서커스 장면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럼요. 상단의 다섯 여래를 비롯해 중단의 제사상과 제사 지내는 장면 그리고 그 아래에 아귀(餓鬼)도 있으니 불화 맞습니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감로도(甘露圖)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하단 부분에는 기차 터널이라든가 빌딩 도시 같은 이색적인 광경으로 가득할까요.”

“그래서 눈여겨볼 중요한 작품이지요. 1930년대의 대표적 풍속화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희귀한 불화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문을 연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전시장에서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문제의 작품은 화사(畵師)인 보응 문성(普應 文性)과 밑그림인 출초(出草) 담당 남산 병문(南山 炳文) 비구스님이 그린 ‘흥천사 감로도’(1939년)이다. 삼각산 흥천사는 서울 정릉 가는 아리랑고개 길목에 있다. 감로도는 망자(亡者) 천도(薦度) 의식에 사용되는 독특한 도상의 작품이다. 떠도는 영혼을 위로해 주는 그림. 이 얼마나 훌륭한가. 그것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더 챙긴 그림이다. 천도 대상의 고혼(孤魂)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행한 시대다. 마치 오늘날의 시대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는 ‘달콤한 이슬(감로)’을 더 많이 기다리게 한다.

보응 스님 작품 옆의 이영실 작품은 현대판 감로도로 옻칠 기법을 활용했다. 작품 속에는 코로나19 진료소 풍경 등 팬데믹 환경을 담았다. 옻칠 작업의 백미는 전시장 초입을 장식한 성파 종정스님의 호랑이 그림이다.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2012년)’는 잠에서 깬 위풍당당한 자세의 호랑이를 크게 묘사한 대작이다. 어려운 시대의 아픔을 딛고 활기차게 일어서기를 기대하는 작가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채색 옻칠이라는 재료를 새삼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흥천사 감로도’ 일부를 확대한 모습. 1930년대 일제가 벌인 전쟁 모습들이 담겼고, 일제가 설치했던 통감부 건물 앞과 기마병의 모습도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흥천사 감로도’를 살펴보자. 한복판은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재(齋)를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그 아래의 흉측스럽게 생긴 아귀들은 목구멍이 바늘 같아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존재다. 굶주린 귀신이다. 의식을 거행하는 옆에는 서양식 복장의 세련된 신사와 숙녀가 서 있다. 한마디로 이 그림은 시대 상황의 현장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하얀 코끼리가 재주 부리고 있는 서커스, 자동차 여행에 나선 사람들, 전당포, 모내기 장면, 대장간, 전신주에 올라 일하고 있는 전공(電工), 도로 공사에 부역 나온 사람들, 멱살 잡고 싸우는 제복의 학생들, 스케이트 타고 있는 젊은이들, 재판장 모습 등 실로 다양하다. 모두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단면이다. 풍속화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그림에서 눈길을 강하게 끌고 있는 장면은 전쟁 모습이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고, 지상에는 탱크를 동원한 전투 장면도 나온다. 육해공군이 모두 있다. 게다가 통감부 건물 앞의 기마병도 나온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이른바 대동아전쟁으로 확전시켰다. 일제강점 시기 중에서도 전쟁 기간은 일상생활을 더욱 피폐하게 했고, 전사자를 비롯해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의 명단을 계속 쌓게 했다. 전쟁은 파괴의 화신이다. 그래서 떠도는 영혼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위로해 줄 망자는 왜 그렇게 늘어야만 했을까. 망자 위무의 역할은 바로 감로도의 몫이다. 흥천사의 그림은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 치유의 개념으로 제작된 ‘달콤한 이슬’이다. 이슬 한 방울이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명의 물, 바로 감로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흥천사 감로도’를 자세히 보면 전투 장면의 여섯 군데 정도는 바탕 색깔이 다르다. 광복 이후 친일이라는 누명을 의식해서 가려놓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은폐는 색상의 차이를 불러왔다. 현재는 가린 부분을 제거하여 시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 시기에 전쟁 장면을 그린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특기사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반 미술계에서는 ‘흥천사 감로도’처럼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한국의 화가들은 현실을 작품에 담지 않으려 했는가. 현실의식의 부재는 한국 미술의 특징인가. 우리 그림에서 희비애락의 진솔한 장면을 만나기는 그야말로 별 따기와 다름없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당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흥천사 감로도’는 매우 소중한 작품이라 하겠다.

불화에 담긴 당대의 현실 풍경,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제로 모처럼 거리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래도 팬데믹 상황의 완전한 종식은 아니다. 그래서 감로도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억울하게 눈을 감은 이를 위로하기 위한 그림. 그것도 동시대의 현실 풍경을 사실적으로 다양하게 담은 그림. 감로도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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