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벤투 감독의 월드컵 시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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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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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 역대 최장수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 그는 2018년 8월 부임 후 일관되게 빌드업 축구를 
추구해왔다.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다른 전술을 실험하는 대신 빌드업 축구를 계속 보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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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 역대 최장수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 그는 2018년 8월 부임 후 일관되게 빌드업 축구를 추구해왔다.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다른 전술을 실험하는 대신 빌드업 축구를 계속 보완할 계획이다. 동아일보DB
이원홍 전문기자
이원홍 전문기자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는 역대 최장 재임 기간을 기록 중인 파울루 벤투 감독(53)은 최근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1-5로 패한 뒤 그동안 추구해 온 경기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2018년 8월 22일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이 한국 팀을 이끈 지 4년이 돼 간다. 그는 1948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첫 축구대표팀이 소집된 이래 한국의 80번째 대표팀 감독(감독 대행 및 임시 감독 포함)이다. 그동안 한국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대표팀을 이끌어 온 벤투 감독의 입에서도 시간 부족 이야기가 나왔다.

벤투 감독으로서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는 11월까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팀의 주 전술을 바꾸기 힘든 상황을 말한 것이다. 선수들이 새 전술에 맞추어 훈련하고 손발을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마주친 시간 부족의 원인은 과거 대표팀 때와는 다르다.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76) 퇴임 이후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독을 자주 바꿨다. 2002년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4번의 월드컵을 더 치르는 동안 사령탑이 12번 교체됐다.

벤투 감독 직전 대표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전 감독(52)은 2018 러시아 월드컵 1년 전인 2017년 7월 대표팀 감독이 됐다. 신 전 감독은 새 전술을 찾기 위해 짧은 기간에도 실험을 거듭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손발을 맞출 수 있도록 빨리 주 전술을 확립하고 주전들을 확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었다. 하지만 그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핵심 전술을 끝까지 숨겼다.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술을 개발해 기습효과를 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결국 첫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장신의 김신욱(34·198cm)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깜짝 기용하며 평소 자주 사용하던 4-4-2 대신 4-3-3 포메이션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이 카드는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한국은 0-1로 패했다. 한국은 독일을 2-0으로 물리치기는 했으나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벤투 감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다른 감독들보다 긴 준비 기간 내내 그는 처음부터 비슷한 경기 운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포백 수비를 바탕으로 후방에서부터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여 가는 빌드업 축구다. 이를 바탕으로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너무 비슷한 경기 방식을 펼치는 데다 주전 선수들이 별로 바뀌지 않아 상대가 전술을 간파하기 쉽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가 경기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대표팀 소집 기회가 별로 많지 않은 상황에서 기회가 올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경기해야 선수들의 손발과 호흡이 더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플랜B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한때 좀 더 공격적인 스리백을 실험하기도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자 금방 그만두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간 부족이란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짧았던 다른 감독들에 비해 그 자신이 오랫동안 한 가지 방식에만 집중해 왔기에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는 벤투호의 불안 요소다.

짧은 기간이지만 실험적 전술을 준비한 뒤 기습적 효과를 노렸던 신 전 감독의 방식과 상대에게 많은 전술이 노출되더라도 긴 시간 동안 한 가지 방식을 일관되게 훈련해 온 벤투식 경기 운영 방식은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벤투 감독이 성공한다면 일관성 면에서 큰 평가를 받을 것이다. 실패한다면 경직된 경기 운영 방식이나 유연성 부족으로 비판받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모처럼 한 감독에게 오랫동안 대표팀을 맡김으로써 과거 감독을 자주 바꾸던 시절의 감독들이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이나 단기 처방에 매달리게 했던 점에서는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 이후 한국 축구의 과제는 분명해 보인다. 짧고 긴 감독 체제의 장단점을 모두 경험해 본 한국 축구계에서 현재로서는 일관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일관성과 유연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벤투#월드컵#시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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