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게으른 소비자’ 시장 급성장, 새우 껍데기 까주는 서비스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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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최대 음식배달 앱 ‘메이퇀’의 한 배달원이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 소비 증가, 
개인별 맞춤 서비스 등이 속속 선보이면서 중국에서는 음식 외에도 의약품, 음료수, 술, 꽃, 도서 등을 30분에서 2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란런경제’가 성행하고 있다. 신속한 배달이 소비자의 게으른 삶을 보장해 준다는 뜻에서 게으름을 뜻하는 중국어 
‘란런’을 썼다. 상하이=신화 뉴시스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최대 음식배달 앱 ‘메이퇀’의 한 배달원이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 소비 증가, 개인별 맞춤 서비스 등이 속속 선보이면서 중국에서는 음식 외에도 의약품, 음료수, 술, 꽃, 도서 등을 30분에서 2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란런경제’가 성행하고 있다. 신속한 배달이 소비자의 게으른 삶을 보장해 준다는 뜻에서 게으름을 뜻하는 중국어 ‘란런’을 썼다. 상하이=신화 뉴시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7일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하기 위해 중국 최대 음식배달 서비스 ‘메이퇀(美團)’ 앱을 열었다. 주요 음식점마다 ‘배달원을 구하지 못해 배달이 지체되고 있다’는 사과문이 떴다. 유명 돼지고기 요리 음식점에 주문을 했는데 평소라면 10∼20분 이내 도착했을 음식이 80분 만에 도착했다.》





배달원 쉬러(徐樂·28)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다 보니 주문이 급증했다. 확진자가 나타나 폐쇄된 일부 지역에는 배달원이 들어가지 못해 배달 지체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남부 푸젠성 출신인 그는 2017년부터 베이징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며 “벌이가 좋을 때 월 최대 1만4000위안(약 271만 원)을 벌었다”고 했다. 중국의 대졸 평균 초임이 6000위안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배 이상 많은 수치다.

반려동물 대신 산책 서비스도

원래부터 외식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음식 배달 서비스가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배달원 규모는 약 130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대부분이 음식을 배달한다. 당국이 분류한 직업 분류 목록에 ‘음식 배달원’이란 직업이 신설될 정도다. 각종 배달 서비스의 편리함이 소비자로 하여금 게으른 삶을 즐기도록 해 준다는 이유로 ‘란런경제(懶人經濟)’의 첨병이란 말까지 나왔다.

란런의 사전적 의미는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바쁜 일상 때문에 끼니는 주로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고 가사노동 또한 남의 손을 빌리는 2030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가사 노동을 맡길 때도 스마트폰만 몇 번 클릭해 해결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심지어 새우, 가재 등의 갑각류를 먹을 때 껍데기를 대신 까주는 ‘바오샤스’, 반려 동물을 대신 산책시켜 주는 ‘류거우스’, 옷장 정리사 등도 등장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게으른 사람이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받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비자의 게으름이야말로 전 산업의 혁신과 효율을 증진하는 촉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음식 배달 서비스가 주도했던 중국의 란런경제가 정보기술(IT)과 접목해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매체 진룽제(金融界)는 최근 “중국의 란런경제는 과거 ‘효율적 게으름’을 추구했지만 이제 ‘고품질 게으름’으로 향해가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이런 변화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확진자가 단 1명만 나와도 해당 구역 전체를 봉쇄하는 중국 특유의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에 15억 인구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재택 소비 또한 증가했다는 이유다. 이에 집을 뜻하는 ‘자이(宅)’를 사용해 란런경제 대신 ‘자이경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KOTRA 상하이 무역관은 지난해 말 ‘중국, 란런경제 3.0 시대에 접어들다’ 보고서에서 란런경제를 3단계로 구분했다. 음식 배달 서비스가 주도했던 초기의 란런경제를 ‘란런경제 1.0’, 이어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 각종 가사 서비스, 반려견 산책 등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들을 대행하면서 분화하고 있는 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는 ‘란런경제 2.0’으로 규정했다. 마지막으로 ‘란런경제 3.0’은 5세대(5G) 이동통신, 빅데이터 등 각종 첨단 기술을 접목해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스마트 라이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제품 30분 내 배달

15일 중국 베이징의 한 건물 1층에서 배달원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배달원은 사무실 출입이 금지돼 고객이 직접 음식을 받아가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중국 주요 건물의 1층은 음식을 주문한 고객과 배달원들로 북적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5일 중국 베이징의 한 건물 1층에서 배달원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배달원은 사무실 출입이 금지돼 고객이 직접 음식을 받아가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중국 주요 건물의 1층은 음식을 주문한 고객과 배달원들로 북적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특히 란런경제 2.0은 배달 물품 및 서비스에서 개인화, 맞춤화를 특징으로 한다. 중국의 주요 배달 앱에서는 꽃, 음료수, 술, 과일, 채소, 영유아 용품, 반려동물 용품, 의약품, 도서 등을 주문하면 대부분 30분∼2시간 안에 받을 수 있다. 특히 꽃, 술, 의약품 등 소비자 개개인의 기호와 필요가 완전히 다른 물품조차 주문 후 불과 몇 십분 만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 소비자들 또한 시간을 절약하고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데 익숙해졌다. 소비자가 지정한 물품이 아니라 대강의 가격과 품목을 정해주면 소비자를 대신해 배달원이 특정 제품을 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해 배송까지 책임지는 일종의 ‘쇼퍼’ 서비스도 등장했다. ‘모든 제품의 30분 이내 배달’을 모토로 하는 배달업체 메이퇀산거우(美團閃購)는 자사의 매출 및 이익 증가를 이끄는 핵심 품목이 꽃, 약품 등 기존에 많이 배달하지 않는 제품이었다고 밝혔다.

란런경제 2.0은 요식업계의 변화 또한 이끌고 있다. 최근 중국호텔협회가 발표한 ‘2021 중국 케이터링 산업 연간 보고’에 따르면 패스트푸드와 스낵식품 매장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특히 미리 만들어진 요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1980, 90년대 출생한 중국판 MZ 세대가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간편 요리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온라인에서 완제품 혹은 반제품을 주문하는 소비자가 급증했다고 평했다.

최근에는 삶의 질 향상으로 자가 운전 여행, 레저 여행 등 관광산업이 성장하면서 캠핑 등에 쓰이는 냉동식품 시장의 성장세 또한 상당하다. 중국의 냉동식품 산업 규모는 연간 1200억 위안(약 23조2200억 원).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냉동 국수(640억 위안·12조3880억 원)와 냉동 전골 재료(400억 위안·약 7조7428억 원)이다.

스마트 가전 사용도 활발

IT 기술을 활발히 접목한 란런경제 3.0은 로봇 청소기, 각종 세척기, 음식 조리기 같은 스마트 가전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게으름뱅이 도구 즉 ‘란런선치(懶人神器)’라고 한다. 중국의 주요 포털에서도 란런선치가 핵심 검색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에서도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은 식기 세척기를 필두로 신발 세척기, 채소 세척기, 액세서리 세척기 등 각종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다.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으면 자동으로 음식을 볶아 주는 음식 조리기, 해바라기씨 ‘과즈’를 담은 상자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해 동영상을 시청하며 해바라기씨를 먹을 수 있는 과즈 상자 등도 중국 젊은 층이 애용하는 스마트 가전이다.

시장조사회사 CBN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온라인 소비자가 스마트 가전 등 각종 스마트 기기에 지출한 금액은 2020년을 기점으로 이미 1000억 위안(약 19조3750억 원)을 넘어섰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기기의 소비자 또한 대부분 1990∼1995년에 출생한 중국판 Z세대다. 텅쉰왕은 4일 “중국에서 흔히 알려진 ‘996’(아침 9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 6일 근무) 근무방식으로 직장 내 스트레스가 커진 젊은이들이 가정에서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 스마트 가전의 수요 또한 급증했다”고 진단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게으른 소비자#산책 서비스#30분 내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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