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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물리학자의 우주 산책[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1-12-17 03:00업데이트 2021-12-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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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요즘 매일 즐겁게 걷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걸었지만, 요즘은 해가 짧아져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서 걷는다. 혼자 터벅터벅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걷는 길 위에 또 다른 우주 공간이 펼쳐진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 가로수 불빛 아래 어둑어둑한 길은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걷기에 딱 좋다.

블랙홀 내부를 걷는다면 어떤 경험을 할까?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 무작정 블랙홀 안쪽으로 걷는다면 어떤 시공간이 펼쳐질까? 지금의 공간과 시간은 어떤 값으로 변할까? 거대 중력의 블랙홀 내부에서도 같은 공간일까? 이론 물리학에서는 블랙홀 내부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공간이 시간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와 반전된 시공간의 세계는 과연 어떤 공간일까? 이런저런 정답이 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22일 우주로 향한다. 1996년부터 시작되어 25년 동안 제작하는 데 약 11조 원의 비용이 들어간 이 제임스웹 망원경은, 지난 30년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 허블우주망원경의 뒤를 잇게 될 것이다. 주변의 빛을 차단할 수 있는 차광판과 육각형 거울 18개, 분광계가 장치된 특수카메라로 주변 행성의 생명체 흔적 하나하나를 정확히 감지할 예정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향하는 곳은 지구에서 150만 km 떨어진 ‘라그랑주 L2’라는 곳이다. 이 지점은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과 원심력이 평형을 이루는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중력이 0이 되는 특별한 지점이다.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가 수학적으로 발견한 점이다. 어쩌면, 거대한 중력의 힘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라그랑주 L2’는 쉼터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은 동일한 일직선상에 태양과 지구가 놓이게 돼 차광판으로 태양의 열기나 지구와 달로부터 반사되는 어떤 빛도 쉽게 피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먼 곳에 있어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의 방해 없이 먼 곳을 볼 수 있는 산 정상의 요새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통해 블랙홀과 우주 팽창속도 등 관측할 수 없었던 우주 데이터를 얻게 될 것이다. 지상 600km의 허블망원경 데이터와는 비교가 안 될지 모른다. 우주의 깊숙한 비밀이 속속 밝혀지지 않을까?

11조 원의 제작비용이 들어간 우주망원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누군가는 그 돈으로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만들어 나눠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가 우주에서 날아온 신호를 가지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의미 있는 빵이 되지 않을까. 곧 만나게 될 우주의 신호가 자못 기대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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