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선물 갯벌, 방심은 금물[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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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갯벌은 축복의 공간이다. 다양한 해양생물 서식지로, 흑두루미 등 멸종위기 물새의 주요 월동지다.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을 정화하고, 수많은 어민의 생업 터전이 되는 곳이 갯벌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드문 광활한 갯벌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해안, 아마존강 하구, 북해 연안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꼽힌다. 한국 갯벌은 지난달 26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에 걸친 총 4개의 갯벌이 포함됐다. 생명력 넘치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만만하게 생각하고 들어가면 안 된다.

연평도에서 10개월간 상주하며 해양문화를 조사할 때의 일이다. 아침마다 해안 길을 걸으며 생업에 나서는 어민들을 관찰했다. 운 좋은 날엔 어선에 동승해 물고기 잡는 모습을 촬영하고 기록했다. 그렇지 못한 날은 물때에 맞춰 삼삼오오 갯벌로 나가는 주민들과 동행했다. 어느 날 소문난 갯벌 채취 달인인 채모 씨와 함께 나섰다. 망둥이와 민꽃게가 있는 곳을 귀신처럼 알고,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다. 그는 주민들보다 몇 배 이상 잡았다. 이후로 그를 따라 나서는 일이 잦았다. 채취 기술뿐만 아니라 갯벌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줬다. “해산물 채취에 집중하면 물 들어오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저기 거문여라는 갯바위 보이지요. 몇 년 전 노인 두 명이 굴 캐다가 밀물을 눈치채지 못해 사망했어요. 작년에는 관광객 3명이 밀려온 안개에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해경에 구조됐어요. 평생 바닷가에서 산 사람들도 방심하면 위험한 곳이 갯벌입니다.”

옅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수개월간 갯벌을 다닌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혼자 갯벌 탐사에 나섰다. 낙지구멍, 피뿔고둥을 촬영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밀려든 자욱한 안개로 방향감각을 잃었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두려움 그 자체였다. 갯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밀려든 안개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채 씨가 알려준 방법이 떠올랐다. “해무(海霧)가 낄 때 육지 방향을 모른 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 큰일 납니다. 갯벌에 새겨진 물결자국의 직각방향으로 걸으면 육지가 나와요.” 바로 그 말이 안개를 헤치고 나올 수 있게 해준 등대였다.

최근 3년간 갯벌 사망자가 23명에 이른다. 대부분 바닷물 들어오는 시간을 잊은 게 화근이다. 물이 들어와도 금방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밀물이 들어오는 속도는 시속 7∼15km다. 성인 남성 걸음보다 2, 3배 빠르다. 올해 경기 화성시 제부도에서 안개 낀 날에 개불잡이 하던 남성 2명이 숨졌다. 안개로 길을 잃고 밀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갯벌 해난사고는 해산물 채취 재미에 빠져 밀물이 들어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 고립되는 경우와 안개로 방향감각을 잃어 밀물에 갇히는 사고가 주를 이룬다. 물때를 확인하고 바닷물이 밀려오기 전에 나와야 하고, 갑자기 안개가 끼면 즉시 뭍으로 향해야 한다. 갯벌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갯벌#방심#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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