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미래 ‘위드 코로나’, 집단면역 이후 전략 서둘러야[광화문에서/유근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노랫말 하나가 있다. “이매진 데어 이즈 노(Imagine there‘s no) 확진자 수∼.”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에서 따온 문장이다. 처음엔 식사자리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노랫말에 담긴 그들의 고민이 결코 가볍지 않아 다시 곱씹어 보게 됐다.

‘이매진 노 확진자 수’ 가사에는 방역 공무원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매일 나오는 신규 확진자를 집계하지 않아도 될, 코로나 종식 이후 세상에 대한 염원이다. 1년 7개월 동안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이들의 고단함이 느껴져 마치 ‘노동요’의 한 자락처럼 들린다. 하지만 국가와 군대 종교가 없는 세상을 꿈꾼 원곡 가사처럼, 아직은 비현실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확진자 수가 없는 세상’에는 다른 뜻도 있다. 한동안 코로나19가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가정하에 확진자 수 집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확진자 발생 추이에 따라 방역 강도를 조이고 푸는 지금 시스템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란 물음도 담겨 있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는 방역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이다. 전체 확진자 수를 억제하기보다는 사망률 낮추기와 위중증 환자 관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국가 경제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환자 수 관리를 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결정이다. 이런 나라들에선 코로나19는 언제든지 감염될 수 있는 일상적 질병이다. 마치 우리가 독감, 골절 환자가 하루 몇 명 발생하는지 집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한국은 확진자 수에 대한 강박이 여전히 심하다. ‘1000명대’ 환자가 연일 발생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인구 대비 확진자가 우리의 10배 수준인 미국, 5배 수준인 유럽연합(EU) 등에서 마스크 반대 시위가 발생하는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기 수준에 있는 우리가 그들보다 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확진자 숫자에 대한 과몰입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차 유행을 막은 뒤 이른바 ‘K방역’의 성과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하지만 그 자화자찬이 이내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확진자 수가 조금만 늘어나도 위기의식이 더 빠르게 퍼진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 정도 환자가 나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내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다주택자를 죄악시하는 높은 도덕률을 제시했다가 정작 고위급 공직자의 부동산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손을 쓸 카드가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세상이 될 공산이 크다. ‘위드 코로나’를 넘어 ‘코로나 포에버’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일 확진자 수에 목을 매는 방식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에 비해 정부의 방역은 여전히 근시안적이다. 집단면역을 목표로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지만, 그 이후에 대한 전략은 부족하다. 이제라도 코로나19와 함께 살 궁리를 시작해야 한다. ‘이매진 노 확진자 수’는 여러 고민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코로나19#위드 코로나#이매진 노 확진자 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