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허익범 前특검의 마지막 미션은 백서 발간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1-08-02 03:00수정 2021-08-0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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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등에서 여론조작 사라지는 계기 돼야
정치권은 비방보다 재발 방지책 고민할 때
정원수 사회부장
“가슴에 묻어두고 잊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댓글 여론조작 사건’의 허익범 전 특별검사는 지난달 30일 저녁 혼자 술을 마셨는데,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허 전 특검은 그날 오전 직원을 보내 특검팀의 수사와 재판 경과를 간략하게 정리한 3쪽 분량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특검직에서 당연 퇴직했다. 2018년 6월부터 약 3년 2개월 동안 혼자 감내해야 했던 마음고생을 ‘혼술’로 달랜 것이다.

“굉장히 힘든 여정이었다”는 허 전 특검의 소회대로 특검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정권 초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수사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특검팀 구성부터 쉽지 않았다. 검사 13명의 명단을 법무부에 보냈지만 이들 중 2명만 수락했다. 일부 검사는 “못 가겠다”고 했고, 법무부가 파견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허 전 특검은 법무부가 알아서 보내달라고 하고 검사들을 받았는데, 마지막 2명은 특검 출범 당일 오후에야 합류했다.

이런 수사팀이 ‘원팀’처럼 움직일 리가 없었다. 수사 방향을 놓고 이견이 적지 않았고, 60일 수사 뒤 검사들이 30일 특검 활동 연장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재판 확정 때까지 특검과 함께 활동해야 하는 특검보 3명 중 2명은 김 전 지사의 1심 첫 공판을 앞두고 사퇴했다. 허 전 특검은 “내가 인복이 없는 것 같다”며 굉장히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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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약체 특검이라는 평가가 출범 당시에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 전 특검은 수사 첫날 공식 브리핑에서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 말대로 허 전 특검은 움직였다. 우선 ‘드루킹’ 김동원 씨와의 담판을 통해 김 씨가 지인에게 맡겨둔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확보했다. 거기엔 김 씨가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 프로그램 시그널과 텔레그램으로 김 전 지사와 대화한 내용이 있었다. 드루킹 일당은 김 전 지사가 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을 본 시점을 중구난방으로 진술했다. 특검팀은 드루킹 일당이 15인분의 식사를 결제한 날짜를 의심했다. 당일 김 전 지사 차량의 동선, 김 씨의 경기 파주시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김 전 지사의 운전사가 김 전 지사의 카드로 저녁 식사를 한 내역을 추적했다. 킹크랩 시연을 좀 더 잘 보이게 할 목적으로 다른 기종보다 가로 크기가 큰 휴대전화기가 사용됐고, 라오스에서 가입된 것처럼 조작된 아이디로 2016년 11월 9일 오후 8시 7분부터 23분까지 시연이 이뤄졌다는 것도 입증했다.

허 전 특검은 김 전 지사에 대한 대법원 유죄 판결이 확정된 직후 “내가 한 역할은 증거가 주장하는 말들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서 재판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12명을 기소해 전원 유죄를 받아 특검 역사상 전례 없는 성과를 낸 허 전 특검은 특검직을 마무리하기 전에 수사와 재판 과정을 상세히 적은 170쪽 분량의 백서를 남겼다. 이 백서는 이달 공개될 예정이다.

여론 조작의 주체는 다르지만 2012,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선 민의를 왜곡하는 일이 있었다. 정치권은 서로 비방할 게 아니라 선거에서 여론 조작이 사라지도록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법 개정이 선거 문화를 바꾼 사례는 차고 넘친다. 허 전 특검이 특검 사무실에 적어둔 문구처럼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By failing to prepare, that‘s preparing to fail)’이 될 수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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