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 현장에 나타난 그는 “원하는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했다. 가스가 꽉 찼으니 밸브를 잠깐 열어주자는 전략이었다. 카스트로는 중세 의사 같아서 그런 식으로 몸(권력)에서 ‘나쁜 피’를 빼낸다는 것. 고무 튜브와 드럼통을 얼기설기 엮은 엉성한 뗏목을 타고 145km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를 향하는 뗏목 행렬이 줄을 이었다. 뗏목 젓는 쿠바인을 ‘발세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익사한 이들도 많다.
▷쿠바는 낭만의 나라다. 특히 시가를 빼놓을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은 “나는 쿠바를 물고 있다”며 쿠바산 시가를 즐겼다고 한다. 쿠바는 속으론 결핍의 나라다. 수도 아바나는 올드카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1940, 50년대 제작된 미국산 뷰익 쉐보레 등이 돌아다닌다. 60, 70년 된 차가 멀쩡히 굴러다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이면엔 수십 년 지속된 미국 경제 봉쇄의 그늘이 깔려 있다.
▷최근 며칠째 쿠바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1994년 이후 27년 만이다. 지역별로 수백, 수천 명의 시위대가 “자유를 달라” “독재 타도” 등 정치 구호도 외치고 있다고 한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비바쿠바리브레(자유 쿠바 만세)’ ‘#SOS 쿠바’ 등의 해시태그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 따른 경제 사정 악화와 코로나19 확산 등이 겹쳐 민심이 악화됐다고 한다.
▷반정부 시위에 놀란 쿠바 공산당은 전국의 인터넷을 끊었다. 올 4월 권력을 승계한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미국이 소셜미디어로 시위를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스트로 형제 등 혁명세대가 모두 물러나고 혁명 이후 세대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62년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바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도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