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더 간교해질 대선판… 소통 리더십 없인 못 헤쳐간다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06-25 03:00수정 2021-06-25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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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열해질 네거티브전 예고한 尹파일 소동
서툰 행보로 빈틈 보이자 바로 찌르고 들어온 것
檢총장 시절과 대통령 후보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달라
공감·소통 능력 배가하고, 주변 인재층 두텁게 못하면
순식간에 추풍낙엽될 수 있는게 대선판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 파일 소동’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선 이슈화 과정 자체가 기존 방식과 다르다.

정치평론가라는 인사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겠다” “방어는 어렵겠다” 등의 표현을 써서 파일에 담긴 비리 의혹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처럼 암시했다.

“저는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양심상” 같은 조미료를 통해 자신의 결론이 내부 양심고발자의 간증처럼 순수하고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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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판단 근거는 밝히지 않고,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표현을 넣어서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까지 궁리했다.

우선 주목할 점은 이런 식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폭로가 가능한 미디어 환경이다. 누구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SNS에 띄우면 포털뉴스 상위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네거티브 행태가 얼마나 경박하고 돌출적이며 비열한 수준으로 횡행할지를 예고해준다.

문제의 파일 출처로 홍준표 의원을 지목한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발언은 그간 여의도에 떠돌던 소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으면 음습한 소문의 저수지에 잠겨 있을 내용을 서슴없이 집권당 대표가 공론화시키는 ‘데스킹 부재’의 시대다.

정치평론가가 어떤 의도, 배경에서 글을 올렸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①개인의 ‘충정+정치 성향’ ②야권 내부 윤석열 경쟁자들의 이심전심 ③윤석열을 때려서 밀당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당 내부 교감 ④여권의 기획 등 네 가지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아마도 ①+②+③이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정답이 어느 것이든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스텝이 꼬이면서 허점을 보였다는 점이다.

총장 사임 후 많은 국민은 공부해서 집권 구상을 가다듬고 나서겠다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공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행보가 서툴다.

특히 열흘 만의 대변인 경질은 사람 쓰는 능력에 대한 우려를 자초했다. 방향성에 대한 혼선은 정치를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둘러싸여 팔랑귀 증상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날파리처럼 모여드는 인사들의 옥석을 제대로 가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주 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직후 열흘간은 황금의 시간이었다. 만약 바로 이준석을 만나 “국민의 변화·개혁 열망을 이 대표 당선에서 실감한다. 30대 당 대표는 보수의 큰 자산이다. 정치를 하게 된다면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함께하고 싶다”는 식으로 끌어안았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지만 윤석열은 여태 총장 스타일로 소통한다. 조직의 리더는 원칙을 지키며 옳은 메시지를 내리면 됐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는 완전히 다르다. 얼굴 비치기 식 만남이 아니라 진지하게 경청하고 토론하고 비전과 대안을 소상히 밝히는 일을 매일매일 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공감·소통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윤석열은 외연 확장 후 입당이나 막판 단일화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는 후보를 결정해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시되는 시대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는 정권교체라는 목표 달성 못잖게 공정하고 공개적인 민주적 참여의 과정이 준수되기를 원한다. 선거에 임박해 밀실 협상으로 단일화하는 방식으론 감동을 못 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에 비해 외연확장력이 뒤질 것으로 여겨졌던 자당 후보(오세훈)의 압승, 이준석 돌풍, 당 지지율 상승 등을 보면서, “윤석열이 아니어도 우리끼리도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자만심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다. 이번 파일 소동은 그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툭 찔러보기식 행동이 나온 것이다.

정권교체를 간절히 열망하는 국민들로선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후보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당과 시너지를 내면서 미래 구상을 다듬어가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다.

정권의 네거티브 공세는 갈수록 저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수십만 좌파이권 네트워크 수혜자들이 목숨 걸린 듯 달려들 것이다. 윤 전총장은 당당히 검증에 임해야한다. 파일의 출처가 당 밖이든 당내이든 검증을 피해갈 왕도는 없다. 공작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해서 내용 자체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일을 거부해선 안된다.

최근 김종인 등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거론하며 차기 대통령 2년 임기 후 내각제 개헌을 얘기하는데, 이런 풍선 띄우기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집권세력 내 ‘정치9단’들도 대선 판세가 불리해지자 비슷한 시나리오를 설계한 바 있다. 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내각제 선호가 많고, 친문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심판(보복)받을 우려가 훨씬 적다는 점에서 환영할 것이다.

윤석열의 진짜 위기는 파일 검증이 아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간교한 움직임들이 물밑에서 일 것이다. 소통과 공감 능력을 배가하고, 사심 없고 내공 있는 인재들을 널리 구해 주변을 두텁게 채우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지지율이 높은 후보라도 순식간에 추풍낙엽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게 대선판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윤석열 파일 소동#대선판#소통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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