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클림트 명작 되찾은 미국… 위안부 책임 못 묻는 우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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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천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들은 60년 넘게 주인 손을 떠나 있었다. 1938년 독일 나치정권이 한 유대인 가족에게서 클림트 그림을 약탈했고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당시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림 주인 마리아 알트만은 2000년 빼앗긴 그림들을 되찾으려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법원에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 원칙이다. 우여곡절 끝에 알트만은 그림을 돌려받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에 ‘외국주권면제법(FSIA)’라는 법이 있었다. 외국 정부가 정당한 보상 없이 자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경우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내법을 마련해놓은 덕분이었다.

일본도 외국 정부가 국가면제를 방패삼아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2009년 법을 만들었다. “자국민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외국의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일본은 국가면제의 예외를 확대해야 한다는 ‘UN 국가면제협약’까지 비준한 전 세계 22개국 중 하나다. 일본의 법대로라면 ‘위안부’ 피해를 야기한 가해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떨까.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하느냐를 두고 서울중앙지법에서 최근 3개월 사이 정반대 판결이 나왔다. 한 재판부는 1월 “일본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고, 다른 재판부는 지난 21일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두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다르게 해석했다.

‘1월 재판부’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배상을 회피하려고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법적 절차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어야 하므로 일본의 위안부 운영은 국가면제의 예외라고 봤다. 법과 실체적 정의가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상식에 가까운 논리였다. 2015년 한일 정부 간에 ‘위안부 합의’가 있긴 했지만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아 재판이 유일한 구제 수단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4월 재판부’ 역시 국가면제를 만고불변의 가치로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외국 정부의 책임을 물은 판례가 거의 없고, 개별 소송보다 국가 간 외교로 해결하라는 게 국가면제의 취지라고 했다.

눈길이 간 대목은 우리 정부와 국회가 국가면제의 예외를 정립하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내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점이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추상적인 기준으로 새로운 기준을 창설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국익을 지키려 국가면제의 예외를 적극적으로 넓혀왔다. 약소국의 설움을 알기에 더욱 절실하고 치밀했어야 할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면서 화해치유재단을 없앤 뒤 3년 넘게 무대책이다. 문 대통령은 1월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을 때 “당혹스럽다”고 했고, 일본이 4월 판결에 대해 “적절한 판결”이라고 입장을 내자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1월과 4월의 두 판결은 얼핏 정반대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한목소리로 묻고 있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클림트#명작#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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