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이 더 추운 예술가들… ‘배려’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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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아르바이트 3개를 해서 한 달에 80만 원을 법니다. 월세로 40만 원을 내고 나머지 40만 원을 생활비로 씁니다.”

몇 년 전 만난 한 무대 미술가는 자신의 소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극 작업에 참여하면 수입이 생기지만 액수가 많지 않은 데다 언제 작품을 할지 예상하기도 어려워 기본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마련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만난 연극인 3명도 “아르바이트 3, 4개는 늘 한다”고 했다.

한 연극 연습실. 배우들이 대본 낭독을 하고 있었다. 실감 나는 연기에 연극을 귀로 듣는 듯 빠져들었다. 한데 한 명의 연기가 약간 어색했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배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연습을 이끌던 김재엽 연출가가 말했다.

“저희 조연출입니다. 담당 배우가 아르바이트를 갔거든요.”

이어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요. 제가 그걸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지도 못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못 가게 하면 안 되잖아요. 아르바이트 일정은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그럴 때마다 빈자리는 조연출이 채운다고 했다. 그는 “조연출의 연기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 일용직 노동자 등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예술인도 그렇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데다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급감했기 때문이다. 빵을 배달하고 포장하는 연극배우, 스크린골프장에서 일하다 손님이 줄어 해고된 뒤 방역업체에서 일하는 뮤지컬 배우, 대리운전을 하는 조명감독…. 갖가지 일을 하면서도 이들의 마음은 온통 무대로 쏠려 있었다. 공연이 잠깐 열리면 무대로 뛰어갔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돼 지금은 온라인 공연이 아니면 달려갈 무대마저 사라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가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으로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금 1400만 원을 받은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결론적으로 준용 씨는 지원 자격, 지원금 사용 과정 등에서 문제가 없었다. 여러 사람이 작업해야 하는 미디어 아트를 하는 준용 씨는 함께한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지원금 일부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준용 씨 입장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지원금을 받았고, 용도에 맞게 사용했는데 비판을 받으니 억울할 수 있다. 그도 코로나19로 전시회가 연달아 취소돼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가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서 3000만 원을 지원받은 건 일단 이번 사안과는 별개다.

그럼에도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문준용으로만 봐 달라”고 호소해도 그가 대통령의 아들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긴급 예술지원을 받기에는 하루하루 절박하게 버티는 예술인들이 너무나 많다. 준용 씨는 그들에게 기회를 양보했어야 했다. 그게 훨씬 더 어려운 동료 예술인들에 대한 배려다. 문 대통령이 퇴임한 뒤 온전히 ‘작가 문준용’으로 활동할 시간은 충분히 많지 않은가. 새해에 그는 39세가 된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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