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어긋난 중대재해법, 졸속 입법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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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제정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에 대해 어제 30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가 모여 입법 중단을 요청했다. 기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2∼5년 이상 징역형 등으로 사고 책임을 묻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 처벌법’이 시행되면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사고와 관련해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2년 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근무를 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 씨 사건에서 촉발됐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법’이 올해 1월 시행됐지만 4월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등 사고가 이어지자 노동계는 더 강력한 처벌 법안을 요구해 왔다.

기업인들이 우려하는 건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의무 범위도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업주, 원청업체의 의무를 뚜렷이 규정하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여당 안에서도 나온다. 원인이 무엇이든 사망사고가 생기면 2∼5년 이상 징역, 5000만∼1억 원 이상 벌금 등 처벌 하한선을 정한 건 헌법상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형사처벌 ‘상한’이 6개월인 미국 일본, 1년인 독일 프랑스, 2년인 영국과 차이도 너무 크다. 안전의무를 다했다는 걸 입증할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운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0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정도로 근로자들의 안전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처벌 수준인 김용균법 도입 후에도 사망자 수에 별 변화가 없는 건 형사처벌 강화만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안전기준 준수 기업에 법인세 인하 등 인센티브를 주거나, 안전교육을 확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중소기업은 사장이 감옥 가면 망한다’는 호소를 엄살로만 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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