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찾는 ‘자발적 방황’[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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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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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살면서 목적이나 방향성 없이 방황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두고 주변에서 “왜 저러고 있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바이올렛과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라난 핀치의 사랑과 삶에 대한 영화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를 봤다. 언니의 사망 이후 자동차를 타지 않던 바이올렛을 설득하여 핀치는 둘이서 차를 타고 낯선 곳을 방문하게 되고 자신과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일이 안 풀릴 때가 있다. 커리어의 위기라고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고,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개인적인 일로 직장 일에 집중하기 힘들 때가 있기도 하다. 시기만 다를 뿐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직장 생활 10년이 되어갈 때 너무 바쁘게 살면서, 회사와 고객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내 삶을 위한 고민을 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런 고민 끝에 내가 내렸던 결정은 회사를 나와 나름의 방황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며 남은 삶을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란 책을 펴낸 편성준 작가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20년 넘게 일했다. 그와 아내는 최근 몇 년 사이 맞벌이 부부에서 두 사람 모두 직장을 그만두고 지내는 중이다. 누구는 부부가 둘 다 노는 모습을 보고 “답이 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편 작가는 자신의 결정에 의해 바쁘게 놀고 있는 중이다. ‘의도된’ 방황이라고 할까. 그는 이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고객이 아닌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몸이 아플 때 휴직하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하듯, 마음이 힘들 때 때론 휴직이나 퇴직을 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몸이 아파 휴직을 한 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마음이 힘들어 직장을 잠시 떠나게 될 경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 역시 문제일 수 있다. 돌보는 방법은 실제 적극적인 치료나 상담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던 것을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직장인은 ‘안전한 길’만을 찾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이 의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은퇴를 했을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해왔던 것인지 회의가 들고, 남이 만들어준 길에서만 열심히 일해 오다 보니 은퇴 후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자.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면 ‘자발적’ 방황은 필수이다. 자기만의 길은 지도를 새롭게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좋은 길이라고 하는, 그래서 대부분 따르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이 무엇인지, 자기 삶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많은 직장인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잃거나 무엇인지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간다. 그리고 은퇴 후 ‘원치 않은’ 방황을 시작한다.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는 임원이 되는 과정이 자신의 색깔을 찾는 과정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경우 임원이 되면서 더욱 자신의 색깔을 잃을 수도 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는’ 편성준 작가가 누군가에게는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가 ‘새로운 답’을 찾고 있다고 느꼈다.

죽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파악했던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쓴 ‘인생수업’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앞서 말한 영화에서 바이올렛과 핀치는 길거리 벽에서 ‘죽기 전에…(Before I die)’라는 문구가 반복되어 적혀 있고, 그 다음 칸이 비어 있는 것을 본다. 나는 그 뒤에 무엇을 쓰고 싶을까? 그 답을 너무 늦지 않게 찾길 바란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새로운 길#자발적#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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