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독주 벗어난 협치가 답이다[동아 시론/김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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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자기확신 속 민심 등 돌려… 과거 ‘민심이반 법칙’ 반복 우려
인적 개편과 정책기조 수정 필요, ‘청와대 정부’ 구태서도 벗어나야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이달 7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이 “최근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책임을 진다”며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최고 책임을 져야 할 노 실장은 유임됐다. 이번 청와대 개편은 부동산 실정으로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철학도 없고 방향도 잘못됐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을 교체하면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고, 국정 방향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 같다. 그러나 노 실장 유임으로 쇄신은커녕 상황만 악화시켰다. 최근 상황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민심 이반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담당 정책 책임자를 우선 경질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책임을 ‘똘똘한 강남 2채 집’을 갖고 있던 청와대 참모에게 돌렸다.

부동산 폭등 원인을 정책 실패에서 찾지 않고 ‘다주택자 때려잡기’에 맞춘 것은 어이가 없다. 5년 단임제 국가인 한국 정치엔 경험적으로 검증된 민심 이반의 법칙이 있다. 정권 출범 3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을 전후로 대통령의 절대 권력이 침몰하기 시작한다. 대통령 콘크리트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압도하는 데드크로스가 고착화된다. 집권당 유력 대선 후보인 미래 권력이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을 걸면서 현재 권력과 충돌한다. 덩달아 정책 실패를 둘러싸고 집권당 내부에서 대통령 주류 세력과 비주류 세력 간에 권력 투쟁이 시작되고, 관료 집단은 권력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복지부동하게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왜곡되고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 기상천외한 현직 대통령 비하 발언이 쏟아져 나온다. 급기야 임기 말에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와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은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고 결국 초라하게 퇴임하는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된다. 애석하게도 최근의 정치 상황은 이런 민심 이반과 국정 실패의 법칙이 판박이처럼 작동하는 것 같다. 다음 달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0개월을 맞이한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8월 11∼13일)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지며 취임 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5월 첫째 주(71%)와 비교해 무려 32%포인트 추락했다. 대통령 지지율 급락은 부동산 실정으로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3040세대와 수도권 거주자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집값 폭등으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은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경질론이 거센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겐 “역할을 잘하고 있다. 자신감 있게 정책을 추진하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문까지 했다. 이런 발언들은 문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다 보니 세간에 ‘문산군’ ‘나라가 니꺼냐’ 등과 같은 거친 구호마저 등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반복되는 민심 이반의 법칙을 깨지 못한 채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통령의 인식 구조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예외이고 전임 대통령과는 다르다”라는 삐뚤어진 자기 확신과 근거 없는 낙관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만과 독주에서 벗어나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행동하는 따뜻한 협치를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용기 있게 고백하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는 정직함을 보여야 한다. 더불어 내각과 청와대에 포진해 있는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자들에 대한 과감한 인적 개편을 통해 정책 기조와 국정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정부가 될 수 있다. 청와대가 내각과 집권당을 수직 통치하는 ‘청와대 정부’라는 구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만약 청와대가 대통령 퇴임 후에만 골몰하면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친문 홍위병 시대를 열어가도록 ‘리모컨 정치’를 작동하면 그 순간 파멸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역대 왕조를 살펴보면 아무리 군주가 대운을 갖고 태어났어도 무능하면 결국 망한다.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인식과 정책적 무능, 그리고 집권 여당의 무기력이 지속 강화되면 레임덕과 정권 교체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오만#독주#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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