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20-06-12 03:00수정 2020-06-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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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 풍미한 문장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2002년 국내 출간된 스페인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의 평전 제목이다. 저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붙였다. 아이들에게 권위에 의한 억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페레의 생전 교육철학이 담겼다.

▷페레는 세계 최초로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자유학교를 세우고 교육의 국가화에 반대했지만 군사반란 배후 조종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그래서 ‘세계 유일한 교육 순교자’라 불린다고 한다. 2004년에는 배우 김혜자 씨가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주제로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나왔다.

▷페레로부터 무려 1세기가 넘게 지난 요즘, 꽃은 고사하고 달군 프라이팬에 쇠사슬, 여행가방까지 동원된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한국에서 아동학대 사건은 집계된 것만 해도 2014년 1만27건에서 2018년 2만4604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고 사망 아동은 5년간 130여 명에 달한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근 80%가 부모였고 피해 아동 10명 중 1명은 다시 학대를 당했다. 이를 막기 위해 법무부가 민법(제915조)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 체벌 금지를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징계권 조항이 자녀 체벌에 ‘면죄부’를 주는 근거가 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국가가 부모의 훈육 방식에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지만, 잇달아 터져 나오는 경악스러운 사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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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모의 체벌을 법으로 막는다고 아이들에 대한 학대나 방임이 사라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된 ‘아동학대 처벌법’이 제정됐지만 학대로 인한 치사 사건은 잦아들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그르친 피고인 상당수가 지적장애와 심신미약, 생활고를 겪는 사례가 많았고,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기를 유기하는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였다. 부모 세대부터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책임의식을 갖게 해주고 부모와 자녀 모두 사회의 촘촘한 안전망이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심리치료도 필요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구호가 유행하던 어느 어버이날, 거리에 걸린 작은 현수막 사진은 요즘도 세간에 회자된다. ‘어버이날―꽃으로 퉁칠 생각 말라.’ 자녀 세대가 보면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이제는 자녀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아동학대를 근절할 때가 됐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아동학대#체벌금지#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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