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의료진 마음도 돌봐야[현장에서/김태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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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성모병원 간호사들이 지난달 13일 ‘마음공감 워크숍’에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의정부성모병원 제공
의정부성모병원 간호사들이 지난달 13일 ‘마음공감 워크숍’에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의정부성모병원 제공
김태언 사회부 기자
김태언 사회부 기자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죠.”

그 한마디에, 최모 씨는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몸속에 가득 고여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는 간호사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일한다. 세간에는 3, 4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나온 ‘집단감염의 온상’. 최 씨 역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3주 동안 자가 격리를 했다.

혼자 남은 방에서 그는 자꾸만 악몽을 꿨다. 자기가 걸릴까봐 두려웠던 게 아니다. 돌보는 환자들이 감염돼 목숨을 잃는 꿈이었다. 하루 4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끼니도 넘어가질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에게 “괜찮다”고 다독여준 건 같은 병원 영성부가 마련한 ‘마음 돌봄 위원회’의 박민우 신부였다. 의정부성모병원은 지난달 13일부터 자가 격리됐던 의료진 80명의 심리치료를 위해 ‘마음 돌봄을 위한 공감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김창욱 소화기내과 교수(50)도 마찬가지였다. 자가 격리 동안 환자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음 주에 뵙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내내 괴로웠다. 중환자실 환자가 급격히 악화됐단 소식을 들었을 땐 자책감에 몸을 떨었다. 김 교수는 “내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다”고 털어놨다.

간호사 조모 씨는 한 환자가 잊히질 않는다. 당시 조 간호사가 한 확진자와 면담했던 게 확인돼 그가 돌보던 환자 수십 명이 격리됐다. 그중 한 환자는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왔단 이유로 다른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거부당했다. 조 씨는 “그 환자분이 절 원망할 듯해 하루도 맘이 편치 않았다. 찾아뵙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했다.

워크숍에서 해당 의료진은 뭣보다 ‘더 관리를 잘 했어야지’란 말이 비수로 꽂혔다고 한다. 한 수간호사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정말 내가 잘못해서 병원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란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TV나 인터넷이 무서워 멀리 했을 정도였다. 워크숍에 참여한 의료진의 상당수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심리치료를 맡았던 이해국 정신건강의학과 교수(51)는 “의료진에 대한 응원은 많았지만 자가 격리에 들어간 일부 의료진의 고통엔 관심이 거의 없었다”며 “환자를 치료하느라 차마 챙기지 못한 그들의 상처와 불안이 컸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수많은 이에게 상처를 줬다. 물론 가장 고통받은 건 환자들과 그 가족이다. 한데 아프단 푸념도 못 한 채 묵묵히 속으로 삭였던 이들 또한 많다. 어쩌면 ‘온상’ ‘소굴’ 같은 무심한 낙인이 누군가에겐 지워지지 않을 화상을 입히고 있진 않을까. 그들은 미증유의 사태에 맞서 최선을 다했다. 이젠 그들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말해줄 차례다.

김태언 사회부 기자 beborn@donga.com


#코로나19#병원#자가 격리#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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