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성장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의 몰락 이유는[광화문에서/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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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루이싱(瑞幸·Luckin)커피의 (비즈니스) 모델은 언제든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쑨리젠(孫立堅) 푸단(復旦)발전연구원 금융연구센터 주임이 8일 이 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이 인터뷰는 차이신(財新) 블로그에 공개됐다.

2017년 창업한 루이싱커피는 세계 최대 커피 체인 스타벅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매장에서 현금 결제를 없애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커피 두 잔 선불권을 사면 한 잔을 무료로 주는 등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세워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했다. 엄청난 물량, 자금 공세로 대규모 적자에 직면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워갔다. 초대형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은 스타트업)에 올라선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증시 나스닥에 상장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내 매장 수가 4910곳으로 스타벅스보다 600곳이 많아져 커피 체인 1위에 올라섰다.

스타벅스를 위협하던 무서운 기세의 루이싱커피로부터 이달 초 회계 부정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2∼4분기(4∼12월) 거래 내용을 조작했다고 스스로 공개한 것이다.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고위 간부가 주도한 가짜 거래로 매출 22억 위안(약 3780억 원)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루이싱커피가 공개했던 지난해 1∼3분기(1∼9월) 매출액이 약 29억 위안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매출 대부분이 사기였다는 뜻이다. 시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루이싱커피의 나스닥 주가가 85% 폭락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로 인해 370억 위안(약 6조3680억 원)이 증발해 버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매장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지만 집단 손해배상 소송으로 루이싱커피가 파산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 내에선 루이싱커피 사건이 단순한 회계 부정 사건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인구 우세’에만 기대면서 맹목적으로 자금을 쏟아부은 중국식 비즈니스 모델이 결국 조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쑨 주임은 루이싱커피 모델 자체가 이번 사건의 중요한 원인이라며 “루이싱커피는 다른 (중국) 기업들의 축소판”이라고 꼬집었다.

‘사오첸(燒錢·돈을 태우다)’, 즉 돈을 불사르듯 앞뒤 안 가리고 대규모로 투자한다는 뜻이다. 중국에 14억 인구라는 거대한 소비층이 있으니 기술 혁신이나 경쟁력 제고 없이도 어디서든 돈을 끌어들여 규모를 확대하다 보면 언젠가 적자를 넘어 성공한다는 중국 기업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만든 허구의 기업 실적을 포장하고, 나아가 투자를 더 얻기 위해 회계 부정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 가짜 재무제표에 속아 대규모 투자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쑨 주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인구가 많다는 장점만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이동 제한이 계속되면 소비 위축이 쉽사리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력 경제 매체인 21세기경제보도는 코로나19 이후엔 거품이 낀 기업의 성과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맞이한 신뢰 하락과 경제 위기를 동시에 뛰어넘어야 하는 중국 전체의 상황과도 비슷해 보인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루이싱커피#스타벅스#회계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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