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보다 더 무서운[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3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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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이 야만일 수 있겠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말없이 망각하는 것은 야만일 뿐만 아니라 더 무서운 야만일 것입니다.’ 중국 작가 옌롄커(閻連科)가 2020년 ‘대산문화’ 봄호에 실린 글에서 한 말이다. 더 정확히 하면, 독일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49년에 했던 말에 자기 생각을 덧붙인 말이다. 아우슈비츠 같은 비극 앞에서 문학은 무슨 문학이냐는 아도르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렇다고 그것을 망각하는 것은 더 끔찍한 야만이라는 논리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우한,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사람이 죽고 가정이 파괴되어 귓가에 그들의 곡소리가 그치지 않는 상황’인데, 지도자와 당의 ‘영명함과 위대함’을 칭송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해괴한 현실에 주의를 환기한다.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고통과 울음이 잊히도록 방치하는 건 야만적이라는 거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 옳은데 서글픈 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자국이 아니라 외국 매체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다. 국가가 입을 틀어막은 탓이다. 그래서 외부 세계는 물론이고 중국인들도 자기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고 죽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실상에 관한 조사도 없고 질의도 없다. 우한 작가 팡팡(方方)처럼 비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던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유언비어 유포자라는 낙인이 찍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게 더 어려워지고 절박해졌다. 팡팡처럼 할 수 없다면 ‘적어도 팡팡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사람들 틈’에 있지 말자는 거다. ‘큰소리로 말할 수 없으면 귓속말’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적어도 진실을 기억하는 ‘침묵자’가 되자는 거다. 그런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희생자들의 피눈물이 잊히지 않도록 하자는 거다. 작가는 국가가 외면하는 진실, 그 진실에 목마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 감염증이 일깨우는 문학 원론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코로나19#옌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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