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둥지’에 대한 욕구[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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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집’ 없애면 다른 사람은 좋은집 갖나
집 넓히려는 1주택자도 도와야 할 국민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12·16부동산종합대책 발표 이후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에서 잇달아 나오는 ‘한 채 말고는 다 처분하라’는 메시지는 코미디다. 자기 권리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의 눈에는 ‘직장 내 갑질’로도 비칠 만하다. 다주택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우월한 직위에 있는 자가 강권할 사항으로는 적절치 않은 항목이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을 판별하는 항목으로 중요했다면 임명할 때 적용했어야 하는 사안이다. 부동산대책 내놓고 총선을 앞둔 때에 내뱉으니 무게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듯이 보인다.

이번 대책은 당정청의 고위 당국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책이 확실한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면 굳이 팔라고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정책을 만들고도 그렇게 예상되지 않는 모양이다. 시장에 이런 신호만 줄까 걱정스럽다.

더 나은 집에 대한 욕구는, 처한 경제적 사정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열악한 곳에서 월세를 사는 사람은 따뜻한 온수가 나오는 집을 부러워하고, 방 한 칸짜리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은 거실이 있는 집을 바라게 된다. 아이들이 커 가면 교육 환경까지 고려한 이사를 생각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럴 때에 서민과 중산층들에겐 대출금이 모자라거나 없으면 그 꿈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집을 넓혀 본 사람들은 안다. 출퇴근이 편리하도록 지하철역 조금 가까운 곳을 찾거나 애들 통학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을 고르다 보면 꼭 ‘그놈의 1억 원’이 모자란다. 담보대출은 물론이고 신용대출, 직장 내 기금대출 등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모아야 부동산 복비나 취득·등록세, 이사 비용을 빠듯하게 낼 수 있다.

오랫동안 청약 가점을 차곡차곡 쌓은 중·장년층들이 앞으로 확대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당첨이 되더라도 그 아파트의 시세가 완공 시점에 15억 원이 넘으면 잔금 대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분양가는 12억 원이었지만 2, 3년 뒤에 행여 시세가 15억 원을 넘나들면 대출이 줄거나 막히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살다가 내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내 집을 담보로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주려고 해도 그 시점에 내 집이 비싸져 있으면 대출금이 줄거나 아예 못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번 대책으로 국민들은 더 큰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후 대출과 세제를 망라한 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해 9·13대책도 강력한 규제로 평가받았지만 별 효과를 내지 못하자 뒤이어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했고, 이번에는 대출 금지까지 담은 방안이 발표됐다. ‘유동성 자금’이라는 물이 계속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자 자꾸 댐을 높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댐의 물이 넘치는 형국이다.

이 정부의 ‘비싼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알겠다. 그 의도가 선하다는 것도 믿겠다. 그런데 이번 정책으로 집을 한 채 가진 국민이 더 좋은 곳에서 살려는 권리는 침해를 받게 됐다. 투기를 막으려는 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라 어렵게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가졌고, 조금씩 더 좋은 집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닌 것일까. 고위 공직자에게 집을 팔라고 할 때도 1주택자는 예외다. 1주택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가 도와줘야 하는 일 아닌가.

‘과격한’ 부동산정책을 자주 접하다 보니 주택정책의 근본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비싼 집값을 잡으면 나머지 국민이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갖게 되는 것인가’, ‘정부 주택정책의 목적은 비싼 집을 없애는 것인가, 아니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에게 좋은 집을 제공하는 것인가’.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부동산 정책#분양가 상한제#대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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