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고무줄 공시가격’ 논란… 국민도 ‘산식’ 알 권리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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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2부 차장
김재영 산업2부 차장
“많이 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들쭉날쭉하니 납득이 안 된다.”

정부가 20일 확정 발표하려 했던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이 25일에야 늑장 공시됐다. 가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의 신청이 크게 늘면서 확인 과정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올해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이의 신청 건수는 431건으로, 지난해(43건) 대비 10배로 늘었다. 표준지 공시지가 이의 신청도 1582건으로, 지난해(615건)의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의견을 받는 개별 토지와 공동주택도 웹사이트와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단지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지만 정작 결과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공시가격을 발표한 정부의 보도자료는 예년과 달랐다. 통상 ‘전국 공시가격이 몇 프로 올랐다’는 게 제목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시세를 반영한 공시가격이 공평과세의 시작이다’는 선언을 앞세웠다. ‘부자’들만 많이 올렸고 대부분은 시세변동률 이내에서 결정됐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공개된 공시가격안은 실망스러웠다. 정부 설명과 달리 중저가 주택도 시세보다 크게 오른 경우가 많았다. 같은 동네 비슷한 가격대의 아파트에서 인상 폭이 제각각이었다. 같은 단지에서 중소형 아파트 공시가격이 대형보다 비쌌다. 지난해 거래가 전혀 없는데도 공시가격은 급등한 곳도 속출했다. 정작 초고가 아파트는 거래가 없어 측정하기 힘들다고 찔끔 오른 곳도 있다.

집값이 급등해 공시가격도 크게 올렸다던 강남3구에서 공시가격 상승률이 ‘제로’인 아파트도 있었다. 일부러 그랬겠느냐마는 하필이면 공시가격 산정 업무의 책임자인 국토교통부 1차관의 서초구 집이다. 지은 지 15년 넘은 낡은 주상복합인데 인근에 새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늘어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는 게 한국감정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KB국민은행 시세론 1년 새 17.5%나 올랐다. 앞서 발표한 토지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도 주먹구구였다. 지난해 땅값 하락 폭이 가장 큰 10개 읍면동 가운데 5곳은 올해 공시지가가 오히려 올랐다.

기왕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다면 결과로 보여줘야 했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사 기법부터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부실한 공시가격 산정 체제조차 손보지 않았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경우 한국감정원 직원 550명이 넉 달 반 만에 1339만 채를 조사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180채의 가격을 매긴 꼴이다. 그나마 감정평가사는 200명 안팎에 불과해 감정평가업계에선 “의사 대신 원무과 직원이 수술을 맡은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감정원 측은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정밀하게 가격 산정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토부도 “다양한 가격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등 엄정한 시세 분석을 토대로 산정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엄정한 시세 분석 결과가 왜 어이없었는지는 답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이의를 반영해 고쳐주면 된다는 식이다. 감정원 관계자는 “최종 공시 때 전체의 25∼30%는 가격이 바뀐다”고 말했다. 울지 않으면 호구가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시가격의 조사·산정·평가 방식과 근거 자료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복잡해서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1개 사회복지·행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국민들은 산식(算式)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김재영 산업2부 차장 redfoot@donga.com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공시지가 이의 신청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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