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태호]‘위험의 외주화’만 문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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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호 산업1부 기자
황태호 산업1부 기자
올해 초 국내외 산업현장을 두루 다닌 A 씨를 우연히 만났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변을 당한 고 김용균 씨 사고가 거론되자 그가 말했다. “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위험의 외주화’를 얘기하지만 정작 문제는 한국 산업현장에 만연한 안이한 안전의식이에요.”

그는 “우리 산업현장에서도 안전교육을 의무화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수박 겉핥기식”이라고 했다. “근로자들은 교육을 받았다고 ‘사인’만 하면 그걸로 끝일 뿐, 실제 할당량을 끝내기 바쁜 현장에서는 교육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독일 산업현장의 안전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독일에선 안전관리관이 현장의 ‘갑’이에요. 이들이 호루라기를 불면 이유를 불문하고 작업을 중지해야 하고, 점검 결과 별문제가 안 드러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요. 본사 직원이든 협력업체 직원이든, 위험한 것 같다 싶으면 이들을 호출하면 돼요. 기업이 이런 ‘시어머니’를 자발적으로 고용하는 이유는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그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죠.”

산업현장엔 위험한 일이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외주냐 아니냐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안전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모든 안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논의한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도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을 주면 안전에 대한 문제가 경시되기 때문에, 법에 명시된 특정 작업에 대해선 사내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도급인의 산재 예방 조치 의무 확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대표이사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 수립 의무 신설 등 꼭 필요해 보이는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노동계의 관심은 온통 ‘위험의 외주화 근절’에만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 근절 프레임은 ‘하청업체 직원의 작업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국처럼 경직된 고용구조에서는 ‘풀타임’ 업무가 아닌 비정기적인 안전점검 업무는 외주를 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외주업체 직원들은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일감을 받아 전문성을 쌓은 경우가 많다. 외주업체는 또 나름대로 고용을 창출한다.

김 씨의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지 약 두 달 뒤인 이달 14일 발생한 ㈜한화의 대전사업장 폭발사고 사망자 3명은 모두 정규직이었다. 이들 역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였지만 외주직원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지 정치권과 노동계에선 이렇다 할 만한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발생한 충남 당진 현대제철 사업장 사고는 외주업체 근로자가 변을 당했고, 다시 위험의 외주화를 거론하며 마이크를 켜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한 풍경이다.
 
황태호 산업1부 기자 taeho@donga.com
#산업현장#위험의 외주화#하청업체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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