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유치원장은 자영업자인가, 교육자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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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비리 유치원’이란 말이 마치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요즘이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니 어울려서는 안 될 두 단어의 조합이다.

유치원 파문을 취재하던 중 30여 년 전 유치원 원장이 됐다는 A 원장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는 평생을 아이들과 지내고 싶어 유치원을 시작했다.

그가 유치원을 연 시기는 유치원이 그야말로 ‘붐업’이던 때였다. 당시 전국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자녀들이 넘쳐났지만 이들을 보육하거나 교육할 곳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막내아들을 이화여대 부설 유치원에 보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개인 차원에서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유치원 늘리기 정책을 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라에 돈이 없었다. 방법은 민간의 돈으로 유치원을 키우는 것뿐이었다. 정부는 특별한 조건 없이 누구나 유치원을 세울 뜻과 자본만 있으면 유치원 원장이 될 수 있게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사립유치원은 사실상 유아를 대상으로 한 ‘학원’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상당수 미술학원이 유치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 교수는 “처음부터 질적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그때 돈벌이로 생각하고 뛰어든 이들이 악의 뿌리”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사립유치원은 원장의 자본에 의해 설립되고, 원장의 방침에 의해 운영되며, 원장의 방식대로 원비를 징수하고 지출하는 학원의 방식으로 운영됐다. 2004년 유아교육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치원은 정부 분류상으로도 ‘학교’가 아닌 ‘기타 사회교육기관’이었다.

더 큰 문제는 2012년 유치원에 일괄적으로 정부 자금이 들어가면서 생겼다. 당시 정부는 무상교육 구현을 외치며 유치원의 질적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유치원에 누리과정 지원금을 줬다. 별도의 회계 규칙이나 시스템 구축도 없었다. 감시 없이 들어온 돈을 일부 원장들은 ‘내 돈’으로 생각했다. 뒤늦게 정부는 ‘유치원은 법적으로 학교이고 정부 지원을 받으니 공적 기관’이라고 외쳤지만, 유치원장들은 ‘내 돈 내고 세웠고, 취득세 재산세도 내는데 지원금 외 돈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맞섰다.

유치원이 마치 ‘반인반수’ 같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몹쓸 음식을 먹이고 수억 원의 돈을 빼돌려 성인용품까지 사는 몰염치들이 나타났다. A 원장은 “같은 원장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원장들이 전부터 적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이를 방관했고,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같은 단체는 정신 못 차리고 휴업을 운운했다”고 말했다.

A 원장은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없는, 장사꾼 같은 원장들을 깔끔히 척결하면서도 모든 유치원을 ‘비리 유치원’으로 보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꼭 바뀌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A 원장은 “감사 대상 유치원의 91%에서 문제가 발견됐다고 하는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모든 유치원이 이번 감사가 생애 첫 감사였기 때문에 감사 기준도, 회계 개념도 몰라 몇만 원 회계 차이로 걸린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유치원에 대한 감사가 이뤄진 것은 2013년이 처음이다.

A 원장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이들을 사랑해왔다. 모든 유치원을 ‘적폐’로 보진 말아 달라”며 “교육은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는 그 말조차 ‘믿어도 될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 나올 종합대책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추락한 우리 교육 신뢰의 현 주소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비리 유치원#유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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