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동진]유관순 열사의 ‘독립장’ 재심은 불가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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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정부는 애국지사에게 상훈법에 따라 건국훈장을 수여한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는 3등급인 ‘독립장’ 수훈자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 김구 선생(대한민국장), 신흥무관학교 창설 주역인 이회영 선생(독립장)과 함께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등은 공적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등급이 너무 낮다며 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저지 밀사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였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도 건국훈장 수훈자다. 정부는 1950년 3월 1일 독립장을 추서했다. 필자는 10여 년 전 국가보훈처에 질의해 헐버트 박사의 독립장 ‘공적조서’를 훑어봤다. 공적조서에는 ‘해아(헤이그)밀사파견 협력’이라는 8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언제 작성됐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제대로 된 공적심사를 거치지 않고 훈장 수여가 진행된 것이다. 당시는 정부 수립 초기이고, 외국인에게 급하게 훈장을 주다 보니 공적심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뒤늦게라도 공적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필자는 국가보훈처에 헐버트 박사의 공적을 다시 심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한번 결정한 서훈은 다시 심사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답변했다. 재심을 통해 등급을 조정하면 다른 애국지사에 대해서도 재심 요청이 밀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역사자료 발굴 과정에서 정부가 1950년 3월 헐버트 박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욕타임스 1950년 2월 28일자에는 서훈을 받는 사람이 헐버트 박사 이외에 전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 등 10명이 더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헐버트 박사를 포함한 11명 모두에게 똑같이 독립장이 일괄적으로 수훈됐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 기록을 살펴보니 영국인 베델은 1968년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만약 뉴욕타임스 기사가 오보가 아니라면 베델의 서훈 등급이 상향 조정된 것이다. 서훈 등급의 조정이 있었다면 이는 재심의 전례로 간주될 수 있다. 국가보훈처는 1950년 베델에 대한 서훈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국가보훈처는 이제 해명해야 한다.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 상향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유관순 열사의 공적조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가 ‘일사부재리’라는 일반원칙을 고수하는 데 이의를 달고 싶지 않다. 다만 당시 공적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라도 다시 해달라는 것이다. 공적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는 일사부재리 원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유관순 열사#애국지사#건국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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