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원수]MB가 조용히 있었다면 검찰은 그 서류 찾았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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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정치부 차장
정원수 정치부 차장
올해 1월 25일,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 지하 2층. 이곳을 압수수색한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MB) 수사팀이 웅성거렸다. 일부는 “MB가 운(運)이 다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스 실소유주 의혹으로 MB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는 게 검찰의 분위기였는데, 이날 이후 상황이 급반전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오전 검찰 수사팀이 영포빌딩에서 처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을 땐 집행을 거부당했다. “영장에 적힌 자료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압수수색 영장에서 ‘다스 관련 자료’를 아예 빼버린 것이다. 밤늦게 나온 이 영장으로 예상치 않게 ‘비밀창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수사팀이 들어간 빌딩 주차장 옆 사무실 곳곳엔 서류 뭉치가 있었다. MB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발탁된 이듬해인 1978년 자료를 시작으로 기업인(1978∼1992년)과 두 번의 국회의원(1992∼1998년), 서울시장(2002∼2006년), 대통령(2008∼2013년) 재임 시절 자료 등이다. 1990년대 중반 MB가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만남을 직접 메모한 것부터, ‘집사’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비서관이 청와대 재직 시절 MB 지시를 받아 적은 놓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서류 더미에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찾았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MB에 대한 영장범죄사실의 뼈대가 된 100억 원 안팎의 수뢰 단서도 여기서 찾아냈다고 한다. 다스의 미국 소송비 대납(67억7400만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22억6230만 원)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MB에 대한 끈질긴 적폐청산 수사가 그야말로 분수령을 맞은 순간이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여직원 횡령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이 이미 한 차례 이곳을 압수수색했고,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첨단범죄수사부가 다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굳이 다시 해야 되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무실이 ‘불법자금의 저수지’라는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의 진술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올해 1월 초 그는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라며 기존 주장을 뒤집는 자수서를 검찰에 냈다. ‘측근의 배신’으로 불리지만 남모를 사정이 있었다. 김 전 사장이 100억 원 가까운 다스 돈을 개인적으로 빼돌린 게 적발되자 검찰은 강하게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그 압수수색 일주일 전 MB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검찰은 정신을 차리고 수사력을 더 집중했을 것이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검찰의 그 압수수색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10개월 동안 이어진 검찰 수사는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퇴임 뒤 4년 11개월 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서류 더미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MB가 정치 보복이란 말 대신 “대통령이 바뀐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수사 결과가 (2007년 검찰 수사 후) 11년 만에 정반대여서 납득하기 어렵다”고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검찰도, 정권도 지금과는 표정이 달랐을 것 같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mb#다스 실소유주 의혹#다스 관련 자료#영장범죄#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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