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유의 대법관 전원 성명과 대법원장의 처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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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은 어제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에 대해 “사법행정이란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추가조사위가 밝혀낸 문건에 대해 법원 내에서는 특정 판사를 사실상 사찰한 문건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법원행정처 업무 과정에서 작성된 문건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김 대법원장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말로 전자에 힘을 실어줬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은 전날 대법관 13명 전원이 초유의 집단 성명을 낸 데 대한 반응이다. 대법관들은 추가조사위가 청와대가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한 듯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공개하고 일부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화하자 강하게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법관들은 성명에서 “최고 법원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의심받으면 안 된다”며 관련 사실을 정면 반박했다.

추가조사위의 보고서에는 행정처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겨냥해 ‘비공식적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 정보를 수집함…철저한 보안 유지가 필요함’ 등 사법부가 만든 문서라고 믿기 힘든 내용들이 들어 있다. 특정 성향의 법관들을 지목해 별도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의 활동을 감시했다면 분명히 사법부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독립’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김 대법원장이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이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 결과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미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와 암호가 설정된 파일 760여 개를 별도로 조사할 의중까지 내비친 것이다. 자칫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와 김 대법원장 체제 사이에 대립 구도를 만들어 사법부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블랙리스트 논란은 1년가량 법원을 뒤흔들었고, 급기야 최고법원인 대법원으로 불똥이 튀었다. 행정처 판사들의 컴퓨터를 열고 샅샅이 조사했지만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판사도 확인된 바 없다. 김 대법원장이 갈등을 진화하는 쪽이 아니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우려할 일이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다. 분쟁과 갈등의 최종 해결을 맡아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권위는 지켜야 한다. 도를 넘은 사법부 내부 갈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고질병인 좌우 진영 대결이 사법부를 휩쓴 것으로 본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촉발된 내부 갈등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사법부 위상이 안쓰럽다. 내홍이 더 커지면 검찰 등 외부의 통제를 부를 것이다.
#김명수#법관 블랙리스트#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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