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인찬]北 인권에 대한 여야의 촌극, 내년엔 끝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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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기자
황인찬 정치부 기자
시민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최근 ‘2017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했다. 600쪽이 넘는 백서에는 인권 유린을 경험한 탈북민들의 증언이 빼곡하다. 절도 등 중범죄자들이 가는 교화소 수감자들의 증언은 이렇다.

“방이 10평 정도 되는데 한 방에 75명 정도 들어 있어요.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데 (용변기 위의) 나무판자를 열고 닿는 식이었어요. 방에 항상 변 냄새가 나고 똥독도 많이 걸려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으니까 강냉이 죽 300g씩을 나눠줬죠. 그것도 못 먹으면 며칠 내 죽어요. 시체들은 통나무 태우면서 같이 산에 올라가서 태워요. 냄새가 형편없이 지독해요. ‘우리도 죽는구나’ 했죠.”

참혹한 증언 외에 통계치도 눈에 띄었다. 2002년부터 탈북민 총 1만597명을 조사한 결과 1명당 6건의 인권침해 사례를 증언한 것이다. 직접 피해를 겪었거나 목격했다는 신빙성 높은 응답이 80%를 넘겼다.

이런 열악한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북한인권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발의 11년 만의 결실이었다. 그해 9월 법이 시행되자 바로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그 다음 달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북한 인권 조사 및 연구, 시민단체 지원 등 핵심 업무를 하는 북한인권재단은 아직 개소식도 하지 못했다. 여야 간 싸움으로 재단 이사진 구성이 1년 넘게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진 12명 중 2명은 통일부 장관이, 나머지 10명은 여야가 5명씩 추천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근 이사직 한자리를 요구하며 이사를 추천하지 않아 출범이 미뤄졌다. 5월 정권 교체로 여야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사진 구성은 미뤄지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권 바뀌면 바로 설립될 줄 알았다. 연말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답답해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이 최근 진척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통일부 당국자는 “얼마 전 여당에서 추천 이사 5명의 명단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회를 찾아가 이사 추천 협조를 요청해 왔던 통일부 장관은 자기 몫의 이사 2명을 이미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몫의 추천 이사만 정해지면 재단 설립에 바로 탄력이 붙는 것이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6월 지방선거 등 초대형 이벤트 때문에 재단 설립이 얼마든지 정치권의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상근 이사직을 요구하며 다시 자리싸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국회는 더는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무엇보다 재단 출범 지연으로 세금이 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에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마련했다. 하지만 개소가 지연돼 직원 한 명만 텅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사무실 임대료로 매달 6200만 원을 날리고 있다. 법적 용도 외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도 없다고 한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비상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출범해야 한다. 법을 통과시킨 국회가 해당 법을 시행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아끄는 촌극을 끝내야 한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
#북한인권정보센터#2017년 북한인권백서#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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