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퇴사 1년 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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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 즉 퇴준생을 위한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넘쳐난다. 한 해외 사이트는 ‘싫어하는 직장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 5가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일찍 시작하라, 소리 없이 진행하라, 저축을 하라, 공식적인 퇴사의 변을 생각해두라, 인수인계를 잘하라.

▷일본 아사히신문의 기자였던 이나가키 에미코 씨(52)는 퇴준생의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승진에서 밀려 지방 발령을 받고 퇴사를 결심한 것이 마흔 살, 준비 끝에 사표를 낸 것은 쉰 살 때였다. 퇴사를 생각하면서 회사가 재밌어졌다는 그는 막판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다. 헛헛한 가슴을 소비로 달랬던 삶의 방식도 180도 바꿨다. TV와 냉장고를 없애는 등 최소한의 경비로 행복한 일상을 추구하는 그는 ‘퇴사하겠습니다’란 저서로 한국에도 유명해졌다.

▷퇴사 이후의 삶이 다 이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어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퇴사 1년 이상 지나고도 새 직장을 못 구한 실업자가 지난달 30%로 집계되면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경직된 고용시장이 재취업 시장에도 한파를 몰고 온 만큼 충동적 사표는 금물. 혹시 당신이 퇴준생이라면 퇴사 1년 즈음 자신의 좌표를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겠다.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도 명심할 것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예전 직장과 상사에 대해 험담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먹던 우물에 침 뱉기’ 식으로 장기적 커리어 면에서 자살행위가 되기 십상이란다.

▷누군가는 취업을 못해 고민, 누군가는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어서 고민. 어쨌거나 퇴준생에게도 각기 사정이 있는 법이니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할 사안은 아니다. 퇴준생의 롤모델로 떠오른 에미코 씨는 퇴사 이후 인생이 장밋빛으로 변했느냐는 물음에 ‘NO’라고 답한다. 회사를 떠나면 복잡한 고민도 죄다 사라질 것이라 여겼는데 웬걸! 과거에는 문제만 생기면 ‘이게 다 회사 때문, 상사 때문’이라고 투덜댔으나 지금은 ‘남 탓’ 대신 ‘내 탓’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낭만적 퇴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곰곰 생각해볼 얘기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퇴사 이후의 삶#취업#배부른 투정#퇴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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