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길진균]엇나간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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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출발부터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2일 정기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선언했을 때다.

가을 국회, 즉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가 실시되는 9월 정기국회는 ‘야당의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문제, 꼬여만 가는 북핵 위기 등 정부여당의 잘못을 따져 묻고 야당의 역할과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장(場)이기도 하다. 야당의 힘이 먹히는 때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한국당은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2005년 12월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을 이유로 한나라당이 거리로 나선 이후 12년 만의 장외투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장외투쟁은 잘만 쓰면 유용한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4대 개혁입법 저지를 위한 장외투쟁으로 정권 교체의 기반을 다졌다. 다만 여론의 호응과 국민의 지지가 필수다.

한국당은 장외로 무대를 옮기며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낙하산 사장 임명을 막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의 방송법 개정(‘특별다수제’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논의를 계속 거부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 시절 끊임없이 이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슬그머니 개정을 미루려 하는 그 법이다. 한국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규탄 결의안 채택도 거부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한국당이 이러는 것은 뭐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당의 결속과 내년 지방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냥 “밟고 지나가라”는 얘기다.

한국당은 지금의 투쟁이 ‘내부용’이라는 속내를 감출 생각조차 없다. 홍준표 대표는 6일 의원총회에서 “지금은 우리가 장외투쟁을 하면서 야성(野性)을 키우고,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단련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고 또 못마땅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이번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 지지가 뒤따르지 않는 자신을 위한 싸움은 엇나가기 마련이다. 여론의 무관심 속에 한국당은 장외투쟁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 9일 서울 강남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공영방송 장악 STOP!’ ‘문 정권의 구걸안보 즉각 중단!’ 등의 피켓을 준비했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엉뚱한 피켓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 피켓이었다. 무엇 하나 당 지도부의 뜻대로 가지 않는 한국당이 처한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당은 결국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왔다.

한국당이 국회로 복귀한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표결이 부결됐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전략 부재, 제3당의 존재감 부각에 몰두한 국민의당, 한국당의 표결 참석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에 대한 불복” “탄핵에 대한 정치적 보복” 등 격한 반응을 쏟아냈고, 한국당은 “민주주의와 상식의 승리” “다음은 (문 대통령) 탄핵이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과연 한국당의 승리일까.

청와대와 민주당 강경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지지층을 향해 한국당 등 야당을 건너뛰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정치권이 극한 대결 정국으로 휩쓸려 가는 듯하다. 이전투구식 정파 정치는 거대 양당의 오랜 생존전략 아니었던가. 사드 배치 등 안보 문제로 지지층 이탈에 맞닥뜨린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 짙게 드리워진 전운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장외투쟁#직접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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