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주성원]왕족과 평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양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을 ‘푸른 피’로 부른다. 과거 육체노동을 하는 평민층의 피부색이 햇볕에 그을려 어두운 데 비해, 왕족이나 귀족의 피부색은 희기 때문에 푸른 정맥이 도드라져 보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푸른 피를 유지하기 위해 중세 유럽 왕가는 다른 왕가나 친척과의 결혼을 당연하게 여겼다. 왕족과 평민의 결혼이 가능해진 것은 왕이 더 이상 통치하지 않게 된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모나코 레니에 3세 국왕과 결혼한 이후 유럽에서는 왕족과 결혼한 수많은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보러 호주를 방문한 프레데리크 덴마크 왕세자가 우연히 부동산회사 직원 메리 도널드슨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끝판왕’ 격이다.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세녀와 헬스트레이너 다니엘 베스틀링은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의 반대를 극복하고 2010년 결혼했다. 결혼 후 베스틀링은 스웨덴 의회에서 왕자 칭호를 부여받아 왕실의 일원이 됐다.

▷평민이 결혼으로 왕족이 된 유럽과 달리 일본에서는 왕가 여성이 평민과 결혼하면 왕실(황실·皇室) 전범에 따라 평민이 된다. 일본 왕실은 3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손녀 마코(眞子) 공주가 대학 동창 고무로 게이(小室圭) 씨와 약혼해 내년 결혼식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고무로 씨는 관광지 쇼난에노시마(湘南江の島)의 홍보대사인 ‘바다의 왕자’ 출신. 공주가 ‘왕자’와 결혼해 평민이 되는 이야기가 탄생한 셈이다.

▷일본에서 평민과 결혼한 첫 왕족은 아키히토 일왕이다. 왕세자 시절인 1959년 평민 출신 쇼다 미치코와 결혼했다. 과거 일본에서도 왕족은 왕족 또는 귀족(화족·華族)과만 결혼한다는 왕실 전범이 있었다. 패전 직후인 1947년 일왕 직계가 아닌 왕족과 귀족을 모두 평민 신분으로 만든 뒤에도 왕족, 귀족 출신 간 결혼은 불문율처럼 남아 있었다. 마코 공주가 결혼하면 일본 왕족은 18명밖에 남지 않는다. 왕자들은 고령이고 왕세손은 4명 중 3명이 딸이어서 언젠가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것이 왕실의 고민이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왕족#귀족#푸름 피#평민#신데렐라#일본 왕족#일본 공주 결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