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최지훈]나는 이제 아저씨가 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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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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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나는 아저씨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아저씨로 변하는 과정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아저씨 같다”는 말은 언제나 농담이었다. 이젠 아니다. 어느새 주변에도 완전한 아저씨들이 넘쳐흐른다.

아저씨가 되기 싫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는 걸으며 담배를 피웠고, 바지에 티를 넣어 입었으며, 소리치듯 통화하곤 했기에 닮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 모습을 닮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저씨. 나는 그런 아저씨가 되었다. 청년기의 끝에 서서 발가락 힘으로 버텼으나, 버티고자 하면 이미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놓으니 맘이 편하다.

‘아저씨’라는 단어는 본래 가족 간의 호칭이다. 사전엔 ‘부모와 같은 항렬에 있는, 아버지의 친형제를 제외한 남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통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과거 우리의 특성상 동네에서 마주치는 웬만한 아저씨는 거의 다 ‘아저씨’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발전과 함께 자라난 마을의 규모처럼 현대 ‘아저씨’의 의미도 부쩍 넓어졌다. 그저 성인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결혼한 남자를 뜻하기도 한다. 단어의 뜻에는 결코 나쁜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요즘 아저씨의 어감은 다소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심지어 ‘개저씨’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까.

가만 보면 아저씨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어릴 적 아저씨들은 힘도 좋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었다. 동네에 물난리라도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래주머니를 들고 뛰던 분들이 바로 아저씨들이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 올린 것도 아저씨였고, 충치를 뽑던 무서운 사람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강했다. 강함이 과했을까.

아저씨의 비호감은 비매너에서 온다. 비매너는 흔히 본인 위주의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인 위주의 사고방식이 우선일 텐데 유독 아저씨의 그것만 도드라졌다. 강했기 때문이다. 강하게 자기 위주였고 강했기에 제지하기 어려웠다. 언제까지나 용인해 줄 수는 없다. 아저씨의 강함은 세상의 뭇매를 맞고 사라져가고 있다.

아저씨를 뜻하는 방언으로 좀 더 살가운 어감을 가진 ‘아재’라는 말이 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이 아재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어중간한 나이로 젊은이들 문화에 끼지 못하나, 그렇다고 어른이라기엔 부족한 듯한 나이대를 놀리는 말이다. 갓 전역한 복학생부터 30대를 넘어 40대까지 아우르는 다소 넓은 범주의 단어다. 아저씨를 대체하는 단어인 셈이다. 하지만 둘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아재는 아저씨보다 귀엽다. 아저씨에서 불쾌한 특징만 걷어내면 아재가 된다. 유행어 등을 몰라 어수룩해 보이는 아재지만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은 투철하다. 아재는 아저씨처럼 고집 부리지 않는다. 강압적이지도 않다. 아재는 아저씨보다 매너가 있다.

신출내기 아저씨의 삶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이제 형, 오빠 소리를 들으면 반갑다. 자라나는 미래의 일꾼에서 전선의 용사로 보직이 바뀌는 기분이다. 앞서간 아저씨들이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겠구나 하니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인구연령 분포도의 허리가 되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구나. 세상 모든 아재여, 힘냅시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아재#아저씨 비호감#아저씨 비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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