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의 오늘과 내일]‘무인(無人)경제’ 시대를 앞둔 노동조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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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산업부장
박현진 산업부장
최근 택시를 타면서 운전기사들과 자율주행차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눈다. 이들의 궁금증은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와 자신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얼버무리곤 했지만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진 못했다.

추석 연휴 동안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가 미국 피츠버그에서 처음으로 자율주행택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우버의 목표는 100만 명이 넘는 우버 택시 운전자를 자율주행차로 최대한 빨리 대체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건비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데다 관리하기 힘든 인간 운전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역시 연휴 동안 스웨덴 스톡홀름 동남부의 작은 도시 에스킬스투나에 전 세계 100여 명의 언론인이 모였다. 볼보건설기계가 시연한 무인 트럭과 무인 건설 중장비에 참석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컨트롤타워에서 기사가 없는 여러 대의 트럭과 건설 중장비를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채 원격조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많은 트럭 기사와 중장비 기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택시 버스 트럭 기사, 그리고 중장비 기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사라질 직업이 벌써부터 화두다. 올해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불과 4년 뒤인 2020년까지 사라지는 일자리가 700만 개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4차 혁명으로 200만여 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나지만 결과적으로 500만 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1차 산업혁명 앞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계수단을 잃었다. 급기야 이들은 기계를 파괴하자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벌였다.

그렇다면 4차 혁명과 함께 다가올 ‘무인(無人)경제’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정부와 기업은 지금 볼 수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경주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전 세계 7세 어린이의 65%가 20년 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일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기업이 새 일자리에 주력한다면 노조는 다가올 무인경제 시대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그러면서 지켜보는 현대자동차의 장기간 파업과 23일 금융노조 총파업이 훗날 우리 아들과 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지 궁금해진다. 현대차 노사는 올 들어 23차례나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현대차 노조는 잠정 노사합의안을 80%에 가까운 투표율로 부결시켰다. 중앙쟁의대책위원회 속보를 통해 추석 이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길게 보고 가겠다’며 게릴라식 장기전을 예고했다.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단기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대형 노조의 철옹성은 갈수록 견고해지는 듯하다.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는 동안 청년 세대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학교를 더 다니고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오간다.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버지 세대들이 파업에 나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로니컬하다. 어렵겠지만 조금 양보하고 그 일자리를 자녀 세대에게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

200여 년 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기계를 파괴하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노동자들은 그 길이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불과 몇 년 뒤 깨달았다. 파업에 나서고 있는 노조에 감히 얘기하고 싶다. 투쟁만 길게 볼 일이 아니다. 무인경제시대에 직면하게 될 자녀 세대의 일자리를 더 긴 시각으로 봐야 할 때다.

박현진 산업부장 witness@donga.com


#자율주행차#우버 택시#4차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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