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유리 천장과 유리 마스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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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2014년 선정한 ‘기업부문 파워우먼 50인’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47위에 올랐다. 보수적인 금융계에서 여성 은행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국책은행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여성이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을 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기업경영 평가기관인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280개 계열사를 분석한 결과 여성 임원이 없는 기업이 204개(72.9%)나 됐다.

▷속을 들여다보면 더 심란하다. 전체 177명의 여성 임원 가운데 외부영입 인사가 110명(62.1%)으로 자사 출신 53명(29.9%)의 배가 넘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강소라 분)가 원인터내셔널의 임원이 될 확률은 크지 않은 셈이다. 기업들이 내부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성 임원을 키우기보다 필요할 경우 외부에서 검증된 인물을 데려다 쓰는 걸 선호한다는 얘기다.

▷공채도 아니고 영입 인사도 아닌데 ‘별’을 다는 여성도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같은 대주주 일가의 여성이다. 개그우먼 박은영이 ‘개그콘서트’에서 노래한 대로 ‘호적등본’이 최고의 스펙인 셈이다. 이런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기업에서 ‘유리 천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 30%까지 확대’ 같은 쿼터제가 정치권에서 논의되면서 공공 분야에서 여성 임원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에는 프랑스처럼 2017년까지 민간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40%까지 늘리도록 의무화한 나라도 있다.

▷자서전 ‘린인(뛰어들라)’으로 많은 여성에게 용기를 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회의 때 남자가 말하면 사람들이 경청하지만 여자가 말하면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 생겨 발언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샌드버그 같은 최고위직도 이렇게 말할 정도니 여성 임원이 드문 우리 기업문화가 어떨지는 상상이 간다. 여자에겐 유리 천장뿐만 아니라 유리 마스크까지 공고한 듯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유리 천장#유리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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