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제유가 급락하는데도 우울한 경제 진단 나오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5년 5개월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63달러로 하락했다. 반년 전보다 약 40% 낮아졌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 가격도 동반 약세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확대, 글로벌 경기 침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세계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것은 오랜 상식이었다.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유가 하락이 원유 도입 비용과 생산단가, 물가상승률을 낮추면서 호황으로 이어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국제경제 현실에서는 ‘유가 하락=호황’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고 있다.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등 신흥경제국의 경기 침체로 유가가 낮아져도 교역이 늘어나기 어렵다. 러시아 나이지리아 등 원유 수출국들은 유가 하락으로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신흥국발(發) 통화위기설까지 나온다. 인플레이션보다 무섭다는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졌다.

기획재정부는 그제 ‘저유가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유가 하락은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촉진시켜 시차를 두고 우리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생산단가가 줄더라도 글로벌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일본 엔화의 초약세로 국내 기업의 수출에 어려움이 커졌다. 기재부도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유가 하락의 긍정적 파급 효과는 예전에 비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어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8%에서 3.5%로 낮추었다. KDI는 유럽 경제의 장기 침체, 중국 경제의 급속한 둔화가 겹치면 최악의 경우 3%대 초반으로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성장은 실업, 가계 부채, 재정 적자, 복지 재원의 한계 등 많은 경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정부나 여야 정치권에서는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위기감도 찾기 힘들다.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는데도 우울한 경제 진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