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대호]일이 같으면 월급도 같아야 하지 않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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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생산성 격차 아닌 소속에 따라 처우 천차만별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부조리
노사관계 대립-투쟁 내몰고 청년들 고시-공시열풍 부채질
공공부문이 솔선수범… 임금-근로조건 표준 만들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같은 무기 계약직 경비원이라도 미래창조과학부는 연봉이 5018만 원(2013년 기준), 국세청은 1571만 원이다. 국토교통부는 4717만 원, 고용노동부는 3697만 원, 안전행정부는 1874만 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작성해 은수미 의원을 통해 공개된 ‘중앙행정기관 무기 계약직 임금제도 개선방향’ 보고서 내용이다. 경비 업무 외에도 공공기관 41곳의 운전, 산림보호 업무 등도 조사했는데 격차는 크고, 직무별 처우 기준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성토하는 목소리도, 시정하겠다는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명백한 부조리지만 불법은 아니고, 대책도 마땅찮아서 그런가?

그런 측면이 있다. 사실 미래창조과학부 수준의 상향 평준화도, 국세청 수준의 하향 평준화도 곤란하다. 고용노동부 수준의 중향 평준화(월 300만 원)조차 ‘공공 귀족’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통계청 ‘2014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임금근로자 1873만4000명의 절반이 월 200만 원 미만, 네 명 중 세 명(75%)이 월 300만 원 미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와 건물 경비원 대부분은 월 100만∼200만 원 수준으로, 이 직무의 사회적(시장)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진퇴양난인 것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고용 관행과 직무별 근로조건이 민간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한 대충 뭉개고 갈 일이 아니다.

직무별 임금 및 근로조건의 표준이 없는 것은 한국 특유의 부조리 중 하나다. 같은 완성차 조립 일을 하는 정규직이라도 현대차와 사내하청, 쌍용차, 동희오토(완성차 조립 외주업체) 간의 근로조건 격차는 경비만큼 크다. 사내하청 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나쁘다 하나 이 역시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차별 철폐=원청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투쟁은 격렬하다. 인간은 빈곤보다 불공평에 더 분노하는 법이니까! 하는 일은 같은데 소속(자리)에 따라 처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면, 사람은 노동의 질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좋은 데 들어가려고 목숨을 건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시험 경쟁의 본질이자 고시·공시 열풍의 뿌리다. 좋은 데 들어간 사람, 즉 노동의 시장 가격보다 훨씬 더 받는 사람은 그 자리를 결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바로 여기서는 ‘해고는 살인’이 되고, 유사시 구조조정은 너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몇 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생존전략 차원에서라도 외주 하청화와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괜찮은 일자리 기근과 비정규직 투쟁의 뿌리다. 동시에 일한 만큼도 못 받는 중소기업 구인난의 뿌리다.

직무에 대한 근로조건의 사회적, 산업적 표준이 없으면 사람은 ‘하늘’을 표준으로 삼아 쟁취=약탈에 나선다. 힘센 놈, 즉 현 세대, 공공부문, 대기업(갑), 독과점기업 종사자는 쟁취에 성공하고, 힘 약한 놈은 그 반대가 된다. 노동시장에 늦게 진입하는 청년·미래세대 대부분은 패배자(loser)가 된다. 이것이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대와 최악의 저출산의 뿌리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부조리가 많지만 이만큼 심각하고 망국적인 부조리는 별로 없다.

산업·부문 간 생산성(지불능력) 격차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하는 일과 누리는 처우의 균형, 즉 공평 개념 없이 자본과 권력의 착취와 억압에 대항하여 권리 쟁취 투쟁으로 일관한 한국의 기형적 노조 운동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노동의 최상층(300만 명)이자 세계적 고임금 집단인 ‘100인 이상 민간기업 사무관리직 보수’를 기준으로 삼고, 직무보다 호봉(연수) 중심으로 보수 체계를 만든 공무원들의 책임도 못지않다. 이는 공무원연금 문제보다 더 심각한 부조리다. 비록 현직 공무원의 기득권을 너무 전향적으로 인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십 년의 호흡으로 연금 부조리의 해법을 찾아냈듯이, 이 문제 역시 그렇게라도 해법을 내야 한다. 공공부문이 진짜 솔선수범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무원 월급 한 푼도 안 줄이고, 바보라도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시장=소비자 선택에 죽고 사는 민간 수준을 감안하여 직무별 임금 및 근로조건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가파른 호봉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경비원#무기 계약직#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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