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문건유출과 기강해이, 김기춘 실장 책임 무겁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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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작성자인 박모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경정)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박 경정을 문건 유출 혐의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이미 오래전 자체 조사를 통해 박 경정을 문건 유출자로 결론 내렸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박 경정 본인은 청와대 내 제3자가 몰래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문건을 빼내 유출했다고 주장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문건 유출은 청와대 내부의 기강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건 유출은 올해 4월 세계일보의 ‘비리 행정관 원대 복귀’ 보도로 기정사실화된 바 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경질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당시 청와대가 취한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 밑에서 일하던 박 경정이 올해 2월 파견 근무 해제에 따라 청와대를 떠나기 전 다량의 문건을 출력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유출자로 확신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런 국기문란 행위가 벌어졌는데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서라도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고 유출된 문건을 하나도 남김없이 회수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그러기는커녕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김 실장에 대한 전폭적인 신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김 실장은 청와대 내부 일이고 자칫 유출 사건이 공개돼 논란이 될 경우 박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출 사실조차 사실상 은폐했다면 김 실장에게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대통령만 보였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혹시 청와대 내부의 기강 해이가 드러날 경우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까 우려해서라면 후배 공직자들도 실망스러울 것이다.

문건 내용과 관련해 김 실장이 ‘찌라시’ 수준이라고 여겨 덮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의 비선 핵심으로 의심받고 있는 정윤회 씨와, 그가 뽑아 기른 비서관 등이 은밀하게 만나 국정과 인사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는 내용이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엄중하게 작성 경위와 내용의 진위를 가렸어야 한다. 측근이나 친인척의 비리를 예방하려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소문도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문건 내용의 진위 확인이든, 문건 유출자 색출이든 김 실장이 처음부터 단호하게 대응했다면 지금처럼 화를 키우진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힘이 센 부속실과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파워게임 같은 양상이 벌어졌는데도 비서실장은 대체 왜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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