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감원 위력 보여준 부원장 혼사의 20m 축의금 행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지난주 토요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강당에서 치러진 조영제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장녀 결혼식에 피감기관인 금융회사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신부 측 축의금 접수대 앞에 20여 m나 되는 줄이 두 줄로 이어졌다니 현직 금감원 부원장의 위력을 실감나게 한다.

금감원은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달리 임직원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이다. 금감원 부원장의 연봉이 지난해 성과급을 포함해 2억7458만 원이고, 복리후생도 공무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여서 국정감사 때마다 비판을 받았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검사하는 권한이 있어 금융회사로선 무서운 존재다.

금감원 임직원 행동강령에 ‘직무 관련자에게 경조사를 통지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위력 때문일 것이다. 친척, 종교단체, 친목단체를 제외하곤 1인당 5만 원을 초과하는 경조사비를 받을 수 없다. 공무원 행동강령도 직무 관련자에 대한 경조사 통보 금지와 함께 조의금과 축의금 한도가 5만 원으로 규정돼 있다.

조 부원장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지난해 5월부터 은행 담당 부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금감원 전현직 임원과 한국은행 임원들에게만 청첩장 40∼50장을 돌렸다”며 “알리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막나”라고 했지만 납득하기 힘든 변명이다. 혼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고 해도 금융사 간부들이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도 결혼식장에 몰릴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부 부처로 치면 차관보급(1급) 간부에 해당하는 사람의 처신치고는 신중하지 못했다.

축의금 행렬이 물의를 빚자 조 부원장은 피검기관에서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그럴 것이라면 처음부터 축의금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공무원들이 직무 관련자에게 과도한 축의금을 받으면 뇌물로 간주하는 판례가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나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도 이번 혼사의 전말을 파악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내놔야 할 것이다. 국회는 공직자들의 금품 수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김영란법을 속히 통과시켜 제2의 조 부원장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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