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준성]정당방위 판결, 국민 납득하게 개선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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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미국 변호사
안준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미국 변호사
최근 집에 들어온 도둑을 때려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20대 청년에게 춘천지법 원주지원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별다른 흉기를 소지하지 않고 달아나려는 50대 도둑의 머리를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로 심하게 때린 것이 문제가 됐다.

법원은 도둑을 제압하기 위한 행위라도, 저항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자를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정당방위를 넘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과잉방위의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위험한 물건’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 특별법으로 가중처벌하기 위해서 끼워 맞춘 건 아닐까. 폭력행위처벌법 적용 범위는 집단적 또는 상습적 폭행이나 흉기,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세 가지의 경우로 제한된다.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는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흉기로 보긴 어렵다.

둘째, 과잉방위의 범위를 축소 해석했다. 오전 3시경 어머니와 누나가 자는 방에서 불을 켜고 나온 도둑이라면 강도나 성폭행범으로 생각하고 흥분할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만약 유사한 사건이 미국 뉴욕 주에서 발생했다면 이 청년을 폭행죄로 기소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자신의 집에서는 물러날 의무가 없다는 ‘캐슬독트린(castle doctrine)’이 있기 때문이다. 설사 기소가 돼도 배심원 재판을 거쳐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을 확률이 높다. 뉴욕 주 형법은 본인, 제3자 또는 건물 부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물리력 행사도 허용한다. 물리력 사용은 세 가지 상황으로 제한된다. 상대방이 먼저 사용하거나 납치, 성폭행, 강도 등의 중범죄 또는 주거침입을 방지 또는 중지하는 경우이다. 도둑인 경우라면 총기류 사용도 합법적으로 허용된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의 정당방위법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사건 장소에 따라 정당방위의 ‘허용 범위’를 구분한다. 자신의 집에서는 치명적인 도구 사용도 허용하나, 기타 장소에서는 상황에 따라 달리 결정하는 ‘비례의 원칙’을 중시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장소의 구분이 없다.

이번 ‘도둑 뇌사’ 사건에서 보듯이 법관의 판단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괴리가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폭력행위처벌법의 흉기폭행 등을 국민참여재판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제안한다. 현재 폭행범죄는 국민참여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법원조직법’의 일부 조항을 삭제하면 된다. 정당방위 허용 범위 확대 논의와 더불어 국민참여재판 대상 확대 논의도 함께 필요할 때이다.

안준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미국 변호사
#도둑#흉기#과잉방위#정당방위#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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