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새정연의 치명적 약점, 무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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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최근 어느 인터넷 언론매체가 보도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다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이른바 진보학자가 진보정당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내용인데, 특히 대중(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는 까닭을 설명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핵심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진보정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깔끔하게 뒤로 물러나 마무리 짓는 결단을 보여주지 못한다. 주장과 설명을 과도하게 한다. 일종의 버릇이다. 대중의 따분함, 식상함을 헤아리지 못한다. 진상을 밝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우선 대중의 요구에 기초한 당장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중의 마음을 읽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 정치적 판단이 부족하다. 당원을 살려야 할 때와 당을 살려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당 전체를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하기도 한다.

김 교수가 언급한 진보정당에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새정연을 진보정당의 범주에 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새정연만큼 김 교수의 지적이 딱 들어맞는 정당도 없을 듯하다.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김현 의원의 경우를 보자.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횡포다. 목격자가 있고 폐쇄회로(CC)TV도 있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거짓말 같은 주장과 설명들을 늘어놓았다. 마지못해 사과했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다 사건 발생 19일 만에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족을 붙여 뒤끝이 깔끔하지 못하다.

새누리당 정미경 송영근 의원의 ‘야당의원 비하 쪽지’ 사건은 혀를 차게 만든다. 공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글 장난을 한 것도 한심하고, 들킨 것도 한심하다. 논란이 불거지자 두 의원은 곧바로 사과했고, 이완구 원내대표까지 나서 국민과 야당에 사과했다.

그러나 이 쪽지는 두 사람만이 주고받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새정연 이종걸 의원이 트위터에서 ‘그년’이라고 한 것이나 홍익표 의원이 마이크에 대고 ‘귀태’ 운운한 것에 비하면 약과다. 설훈 의원은 공식 회의석상에서 ‘대통령 연애’ 발언을 했다. 그러고도 사과는커녕 희한한 변명과 궤변들만 늘어놓았다. 당에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상은 조현룡 송광호 의원이 최근 이런저런 비리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새누리당은 기소 즉시 이들 의원 모두에 대해 당원권을 정지시켜 버렸다. 2012년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가 중앙선관위 디도스 사건에 관련됐을 땐 최 의원을 사실상 출당시켜 버렸다. 어찌 보면 비정할 정도다. 당이 살려고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는 식이다.

최근 김재윤 신계륜 신학용 의원도 비리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새정연은 이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보호하려고 방탄국회를 열었고, 이들이 부당한 탄압이라도 받는 양 감싸는 모습까지 보였다. 비리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을 쳐내기는커녕 지도부에 앉히거나 선거에 내보내기도 한다. 전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반면 남의 잘못에는 사소해도 도끼를 휘두른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것이야말로 오만의 극치다. 왕조시대 군왕은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했다. 혹시 새정연 사람들은 자신들도 무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법이다. 맹자의 말씀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진보#새정치민주연합#세월호#정미경#송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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