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이순신 사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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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이순신.
영화 ‘명량’의 이순신.
‘블록버스터’ 효시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1975년)는 사업적으로도 신세계를 연 경우였다. ‘죠스 티셔츠’ ‘죠스 이빨 목걸이’ ‘죠스 비치타월’ ‘죠스 플라스틱 컵’과 같은 각종 연관 상품 판매를 통해 떼돈을 벌어들인 첫 영화였던 것이다.

얼마 전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로 영화계에서 분명히 자리 잡은 이순신이란 캐릭터를 할리우드식으로 소비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천재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미국 마블코믹스가 만들어낸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같은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이순신이란 인물 자체에는 저작권이 전혀 없다는 사실!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이 영화에 이어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3부작을 구상 중이라고 하는데, 김 감독이 또 떼돈을 벌기 전에 이순신을 소재로 이런저런 아이템의 사업과 영화들을 약삭빠르게 만들어 팔자 고칠 수는 없을까 하는 시정잡배적인 욕망이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것이다.

이순신 연관 상품으론 어떤 아이템이 가능할까?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어떤 장르영화가 가능할까?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고교생들에게 내가 물었다. 돌아온 답은 기상천외하였다. 이들은 모두 고교생 신문 PASS에서 고교생 기자로 활동 중인 인물들이다.

“주방용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름하여 ‘이순신 칼 세트’. ‘이순신’ 하면 옆에 찬 긴 칼이 연상되는데요. 날카로운 것으로 유명한 ‘장미칼’(장미가 그려진 주방용 칼)을 뛰어넘는 ‘이순신 주방 칼 3종 세트’를 만들래요.”(이유진·경남 거창여고 2)

“이순신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어보겠어요. 각 선택 상황에서 당신이 이순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하면 그에 따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재미있게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생각과 행동, 업적을 체득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명량해전을 앞두고 부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이순신이 부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은?’이란 질문이 던져지면 이런 선택지가 제시돼요. 1. 밑져야 본전이지! 2. 백성이 곧 나라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 3. 싸울래? 지금 죽을래?”(양윤빈·진명여고 2)

“청소년 대상 ‘이순신 고민상담소’를 만들고 싶어요. 이순신은 악조건에서도 도전하고 고민하여 좋은 결과를 낸 인물이잖아요? 요즘 학생들은 좋은 환경에서도 불평만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라는 접근을 통해 청소년의 고민을 치유하고 해결해주는 인터넷 고민상담소요.”(조은서·전남 구례고 2)

“‘이순신’이란 이름으로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요?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스포츠에 이순신이란 이름은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할 것 같아요. 이순신의 삶은 그 자체로 ‘전쟁’이었으니까요. ‘이순신 명량대첩 축구화’를 신으면 우리 팀 3명이 퇴장당한 축구 경기에서도 이길 것 같아요.”(김대연·청주대성고 2)

오! 진정 놀라운 창의력이 아닌가.

한편 학생들은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먼저 타임슬립(시간여행) 멜로 장르.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을 타고 전쟁에 나가다가 폭풍우에 휩쓸립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시간과 장소는 2014년 대한민국 서울. 이순신은 과거 자신의 부인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만나면서 혼란에 빠집니다.”(정하나·경남 하동여고 2)

상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50년을 배경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야욕을 품은 일본에 맞서 DNA 복원을 통해 소생한 이순신이 용감히 나선다’(신성호·울산 학성고 3)는 공상과학(SF) 영화도 가능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도 떠올릴 수 있단 사실이다.

“축구협회의 비밀금고에는 아주 오래된 도자기가 있어요. 도자기에 숨겨진 것은 바로 이순신의 영혼.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가 엄청난 패배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때마다 축구협회가 내놓는 비장의 카드이지요.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 때 일본에 끌려 다니다 극적으로 역전승한 이른바 ‘도쿄대첩’도 바로 이 도자기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일전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도자기를 꺼내어 이순신의 혼을 부릅니다. 영혼은 감독과 주장을 불러 비밀회담을 열고 작전지시를 내립니다. ‘학익진’ 전술을 써서 골을 넣거나 명량해전을 떠올리며 일부러 우리 선수 2명을 퇴장당하게 한 뒤 ‘패배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지요.”(김대연·청주대성고 2)

‘명량’의 대성공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던 역사 속 ‘성웅’ 이순신을 지금 이 땅에 살아있는 의미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치하기 그지없게도 성조기가 새겨진 방패를 들고 설치는 ‘캡틴 아메리카’도 미국인들은 즐겁게 소비하며 애국심을 불태우지 않는가. 이젠 이순신을 즐겁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소비하고 사용하는 일을 고민할 때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명량#이순신#할리우드#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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