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동반성장 잔혹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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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우리 동네 얘기다. 동네빵집인 A빵집은 단팥빵과 곰보빵, 크림빵을 2개당 1000원에 팔았다. 바로 맞은편에 대기업 계열의 빵집 체인이 있었지만, A빵집은 잘 버텼다. 대기업 계열의 빵집이 종류는 다양했지만 비쌌다. A빵집은 익숙한 맛의 빵 몇 가지만 싸게 팔아 단골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상황은 달라졌다. 중소형 빵집 체인인 B빵집이 들어선 뒤부터다. B빵집은 A빵집과 비슷한 빵을 같은 가격에 팔았다. 더욱이 인테리어까지 깔끔해 A빵집 단골들은 B빵집으로 갈아탔다. 매출이 급감한 A빵집은 결국 문을 닫았다.

이는 제과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어 매출액 200억 원, 종업원 수 200명이 넘는 대기업 계열의 빵집은 쉽게 출점(出店)을 못하지만 이 규제를 받지 않는 중소형 빵집 체인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중기 적합업종 규제가 생겼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동네빵집이 폐업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을 담당하는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런 사실을 예견했을까. 2010년 동반위 출범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물론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명분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하는 품목이 기껏해야 10∼20개로 생각했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200여 개나 됐어요. 2011년 5월에 공청회를 열고, 같은 해 8월까지 중기 적합업종에 지정할 업종을 확정했어야 했죠. 직원 수는 터무니없이 적은데 3개월 안에 일을 끝내려니….”

당시 동반위는 부랴부랴 중소기업연구원에 200여 개에 이르는 산업별 보고서 용역을 발주했다. 보고서는 물론 나왔다. 하지만 보고서만으로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었다. 과거 통계들을 붙여 놓은 자료가 태반이었다.

전문성이 부족한 동반위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직원들은 벼락치기 식으로 ‘열공’했지만, 3개월 안에 제대로 된 결론을 내기란 만무했다. 그는 “현장에서 해당 업종에 대해 충분히 실사를 하고 정확한 자료와 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판단해야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한 조합의 대표성도 문제였다. 같은 산업인데도 여러 개의 조합이 존재하고, 입장도 달랐다. 조합들은 일제히 “우리보다 더 큰 곳은 사업을 못하게 해 달라”는 식으로 나왔다.

“중소기업 단체가 기자간담회라도 열어서 ○○○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다 망하게 생겼다고 말하면 무시할 수 없었지요. 여론에 떠밀려 우후죽순으로 품목을 선정한 측면도 없진 않아요.”

결국 동반위는 2011년 9월부터 현재까지 100개 품목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기간이 3년인 만큼 당장 다음 달부터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중기 적합업종 재(再)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달 1일 취임한 안충영 제3대 동반성장위원장은 “한쪽이 득을 보면 반대편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제로섬(zero sum) 게임 식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A빵집이 왜 동반성장을 하지 못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지 재지정을 앞둔 지금이라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중소기업#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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